종교개혁의 독일까지… ‘내 맘대로 성별등록법’ 발효

입력 2024-11-04 03:02
여성의 성 기반 권리를 지지하는 ‘렛 우먼 스피크(Let Women Speak)’ 단체 회원들이 지난 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성별등록 자기결정법’을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독일에서 자신의 성별을 법원 허가 없이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성별등록 자기결정법’이 이달부터 발효됐다. ‘종교개혁의 상징’인 독일에서 기독교 가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결정은 교계 안팎에 충격파를 던져주고 있다. 아울러 이 법이 유럽 국가들로 확산되면서 성별 사기 범죄 등에 악용되거나 스포츠 선수의 성별 논란도 잦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3일(현지시간) 독일 언론 등에 따르면 독일 국민은 지난 1일 발효된 성별 자기결정법에 따라 관할 등기소에 성별 변경 신청을 할 수 있다. 만 18세 이상은 ‘남성’ ‘여성’ ‘다양’ ‘기재 안함’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종전에는 법적 절차에 따라 정신과 의사 2명의 심리감정과 법원 결정문이 필요했지만, 트랜스젠더 등 당사자에게 굴욕감을 준다는 비판에 따라 모두 없앴다. 만 14~18세는 부모 또는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본인이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법 시행에 앞서 사전 접수된 성별변경 신청은 지난 8월 한 달에만 1만5000건에 달했다. 성급한 결정을 방지하기 위해 일종의 숙려기간을 두고 법 시행 3개월 전부터 신청을 받았다는 게 독일 정부의 설명이다.

독일은 성별 결정을 자기 판단에 맡기는 17번째 국가가 됐다. 앞서 벨기에 덴마크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몰타 노르웨이 포르투갈 등도 ‘자기 선언’을 기반으로 한 간단한 법적 인정 절차를 두고 있다.

하지만 동성애자 등의 인권보호를 내세운 이 같은 결정이 오히려 여성·청소년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림 알살렘 유엔 특별보고관은 독일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성범죄자와 폭력 가해자의 남용을 막을 장치가 없다”면서 교도소나 탈의실, 화장실 등 성별이 분리된 공간에서 폭력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좋은 성적을 내는 데 유리한 성별로 바꿔 스포츠 대회에 출전하는 일이 지금보다 더 빈번해질 수도 있다.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진평연·대표회장 김운성 목사)의 집행위원장 길원평 한동대 석좌교수는 “이 같은 법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정체성 혼란을 겪는 청소년이다. 실제로는 성별이 바뀌지 않는데 국가에서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 삶을 살게끔 혼란을 야기하고 부추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도 이를 결코 남의 일로 생각해선 안 된다”며 “우리 사회에 이 같은 문화가 흘러 들어오지 않도록 앞장서서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경진 조승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