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30)씨는 마지막으로 ‘집 전화’ 수화기를 들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수화기를 바꿔 달라고 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어느 날 집 전화가 사라지며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게 됐다. 박씨는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면 무료인데 굳이 비용을 내면서 집 전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나 싶다”고 말했다.
한때 대표적 통신 수단으로 명성을 떨친 시내전화(가정용 전화)가 빠르게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가입 회선이 매달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며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다. 현행법상 ‘보편적 역무’로 지정된 시내전화 서비스 공급을 유지해야 하는 통신사들은 수익성 악화에 고민하면서도 쉽사리 사업 축소에 나서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유선 통신서비스 통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 시내전화는 1051만9753회선으로 집계됐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각각 1500만·1400만·1300만선을 내어주며 가파르게 시장이 쪼그라들었고, 올해 들어서는 달마다 5만~8만회선씩 증발하며 매월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현 추세대로라면 내년에는 1000만회선도 붕괴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내전화 시장 축소는 휴대전화 보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99년 무선전화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처음으로 유선전화를 추월했고, 시내전화는 2002년 정점(2349만회선)을 찍은 뒤 내리막길을 걸었다. 스마트폰의 등장이 불러온 무제한 통화의 보편화는 시내전화 감소세를 더 가속화했다.
시내전화가 점차 가정에서 자취를 감춰가고 있지만, 통신사들이 관련 사업을 축소하기는 쉽지 않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은 전기통신사업자(통신 3사)로 하여금 ‘모든 이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적절한 요금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공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유선전화 시장의 80%를 과점하는 KT의 고민이 크다. 10년 전(2014년 1분기)에만 해도 6778억원에 달했던 KT의 홈유선전화 부문 분기별 매출은 올해 1분기 1830억원을 기록하며 4분의 1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인구감소 등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미래 먹거리로서의 성장 가능성이 전무한 사양산업이다.
통신사들은 수익성과 관계없이 남은 가입자들을 위해 시내전화 서비스 제공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내심 정책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보편적 역무 범위에서 시내전화를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 의무가 사라진다면 통신사들이 수익성도 거의 없는 시내전화 서비스를 현 수준으로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시내전화 특성상 가입자가 아무리 줄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요는 남아있을 것”이라며 “인위적으로 사업부를 구조조정하기 보다는, 남아 있는 고객들에게 인터넷전화 혹은 이동통신으로 서비스 변경을 권유하는 식으로 서비스를 점차 축소해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