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속에도 어린 꿈이 자랄 수 있도록… 희망의 끈을 잇다

입력 2024-11-05 03:08
박동찬(뒷줄 가운데) 일산광림교회 목사가 지난달 8일(현지시간) 베트남 하이퐁에서 한국 월드비전의 후원을 받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을 만나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소녀의 집은 좁고 남루했다. 연면적 49.5㎡(약 15평) 남짓한 2층짜리 주택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과 이모, 그리고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1인 가구가 살 만한 공간에 무려 일곱 식구가 거주하고 있는 셈이었다. 의류 공장에 다니는 소녀의 부모는 매달 총 400달러 정도를 버는데 문제는 공장에 다니느라 딸을 돌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소녀의 부모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소녀의 이름은 쯔언 타오 응우엔(9). 지난달 9일(현지시간) 베트남의 북부 도시 하이퐁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을 때 응우엔은 열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집에 드라마에서나 보던 한국 사람들이 왔다고, 한국인을 보니 너무 신기하다고.

가난의 무게에 짓눌린 베트남 아이들

이튿날 박 목사가 하이퐁에서 만나 선물을 전달한 쯔언 타오 응우엔(왼쪽 사진 가운데), 둑 황(오른쪽 사진)과 각각 찍은 기념사진.

응우엔의 집을 찾은 것은 경기도 일산광림교회(박동찬 목사)와 월드비전, 국민일보가 함께하는 ‘밀알의 기적’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박동찬 목사와 응우엔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인사를 나눴다.

“우리 모두 너를 만나려고 한국에서 온 거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올 줄 몰랐어요. 많이 놀랐어요. 긴장돼요(웃음).”

처음엔 겸연쩍은 미소만 짓던 응우엔은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익숙해지는 모습이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자 “춤추는 것도 좋고 그림 그리기도 좋아한다”며 웃었다. 장래희망을 묻는 말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혼자서 생활하고 잠잘 수 있는 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고, 자전거를 갖고 싶다면서 미소를 짓기도 했다.

박 목사는 티 없이 맑은 응우엔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할게. 목사님은 네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어.”

한국에서 준비한 줄넘기 칫솔 색연필 볼펜 등 정성이 담긴 선물을 건네자 응우엔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헤어질 땐 한국어로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지 묻기도 했다. 응우엔은 한국어로 “안녕”이라고 말한 뒤 박 목사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렇듯 열악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과의 만남은 베트남 방문 기간 내내 이어졌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소년 둑 황(10)도 그중 하나였다. 그의 부모는 지난해 갈라섰고, 그를 키우고 있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와 외할머니였다.

경제적으로 곤궁한 처지에 놓인 것은 이 가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년의 엄마가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버는 돈은 겨우 월 200달러 수준인데 더 큰 문제는 외할머니의 건강이었다. 외할머니는 심장 질환으로 최근 수술대에 올랐는데 병원비가 무려 6500달러가 나왔다. 그간 모아놓은 돈을 헐어 쓰고도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어서 2000달러는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아야 했다.

“외손자가 한국에서 곧 손님들이 올 거라는 말을 듣고 엄청 기다렸어요. 청소도 직접 했지요. 아이가 공부에 관심이 많아서 잘 성장할 수 있게끔 지원하고 싶은데 형편이 여의치가 않네요. 정기적으로 목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외할머니의 하소연이 길게 이어지자 소년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정해놓은 꿈은 없어요. 일단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베트남에 깃든 한국 월드비전의 사랑

월드비전 밀알의 기적팀은 지난달 7~11일(현지시간) 베트남 월드비전이 벌이는 다양한 사역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대나 가난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화목한 가정을 선물하기 위한 프로젝트인 ‘해피 패밀리 모델’, 주민들이 공동체를 일굴 수 있도록 도우면서 경제적 여건을 개선할 방안을 찾아주는 소득 증대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베트남 월드비전의 활동에 한국 월드비전의 역할이 크다는 점이었다. 베트남 월드비전은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인 탓에 자국민을 상대로 후원을 독려하거나 모금 활동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필요한 재정은 다른 나라나 기업들의 도움에 기대고 있는데 한국 월드비전은 베트남 월드비전의 든든한 뒷배가 돼주는 단체였다.

베트남 월드비전을 지원하는 세계 13개국 월드비전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후원 규모가 큰 곳이 한국 월드비전이었다. 베트남 월드비전이 운영 중인 25개 사업장 가운데 한국 월드비전이 지원하는 사업장도 6곳이나 됐다. 박 목사는 이 같은 활동을 벌이는 한국 월드비전의 이사이기도 하다. 박 목사는 4박 5일간의 베트남 방문을 마친 뒤 “베트남 월드비전 관계자들의 헌신과 희생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가진 것을 나누고 그렇게 나눈 것을 다시 어딘가로 흘려보내는 일, 그런 나눔의 현장을 확인한 것 같아요. 국적은 다르지만 베트남 월드비전 관계자들과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앞으로도 가족처럼 서로를 도우면서 크리스천으로서의 사명을 다할 생각입니다.”

하이퐁(베트남)=글·사진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