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밧일·넘넌절… 친화적 한글 표현으로 희망 복음 생생하게

입력 2024-11-02 03:00
신구약이 합쳐진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전서인 ‘셩경젼셔’(1911). 1906년 공인된 신약성서와 1910년 번역이 완성된 구약성서를 한 권으로 묶었다. 대한성서공회 제공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엔 ‘번역의 힘’이 컸다는 게 지배적이다. 시적이면서도 섬세한 한강의 필체와 본연의 정서가 각국 언어로 고스란히 해외 독자에게 전달됐다는 분석이다. 내용에 충실한 번역이라도 읽는 이의 상황에 가닿지 않으면 제대로 된 감상이 불가능하다.

인류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한글 성경은 선교사보다 먼저 이 땅을 밟았다. 국외에서 외국인 선교사와 한국인이 공동 번역한 이 책은 짧은 시간 내 수많은 독자를 매료시켰다. ‘은둔의 나라’ 속 조선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번역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대한성서공회사Ⅰ~Ⅲ’(대한성서공회)와 ‘성경의 형성사’(대한기독교서회)로 살펴본 한글 성경 번역 원칙과 사례 등을 소개한다.

넘넌절·올운쟈…직관적 번역 시도

“내 되션 말 보이고쟈 한다/ 네 나를 션생 대졉 하갓너니.”(나 조선말 배우고자 한다/ 너 나를 선생 대접 하겠는가.)

존 로스 선교사가 만주에서 존 매킨타이어 선교사, 이응찬 등과 번역한 최초의 한글 성서인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1882) 표지와 본문. 대한성서공회 제공

스코틀랜드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 파송으로 만주에 온 존 로스 선교사가 조선어 어학교사인 이응찬과 1887년 공저한 한국어 초급 독본 ‘한국어 첫걸음’(Corean Primer) 일부다. 1876년 이응찬을 만난 로스 선교사는 한 달에 네 냥씩 월급을 주고 그에게 조선어를 배워 이듬해 이 책을 펴냈다. 총 23과로 구성된 책에는 당시 한국 사정이 반영된 800문장이 담겼다. 책의 한국어 표현은 의주 방언으로 기록됐는데 이는 의주 출신 이응찬의 영향이다. 이 때문에 훗날 두 사람이 번역에 참여한 최초의 한글 성경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1882)에도 의주 방언이 사용됐다.

그가 어학 교재를 만들면서까지 문어(文語)인 한자가 아닌 한국어 번역을 고집한 건 ‘한글 습득의 용이성’ 때문이다. “간단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문자(phonetic alphabet)를 가진 한글은 한문과 달리 부녀자와 어린이도 하루 만에 배울 수 있으므로 한국 민중에겐 한국어 성경이 적합하다”고 봤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어 표현의 다양성’이다. 그는 “한국어는 그리스어 등 타 언어보다 동사의 연결어미가 뛰어나고 시제 표현이 정확해 한문보다 훨씬 그 의미를 정확히 번역할 수 있다”고 평했다.

로스 선교사가 이끄는 성서번역팀이 번역한 ‘예수셩교젼셔’(1887) 표지와 본문. 대한성서공회 제공

존 매킨타이어 선교사와 한국어 번역자들이 합류한 로스 선교사의 번역팀은 같은 해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와 ‘예수셩교 요안내복음젼셔’를 완성하고 신약성경을 망라한 ‘예수셩교젼셔’를 1887년 펴낸다. 1883년 로스 선교사가 쓴 편지에 따르면 이들의 번역 원칙은 ‘본문과 한국어 어법에 맞는 절대 직역’ ‘개역 그리스어 성경 기준으로 번역’ ‘필요한 경우에 의역’ 등 7가지다. ‘할례’ ‘신발끈’ 등 당시 한국에 없는 문화를 소개할 때나 한국어가 영어보다 원어에 가깝게 번역될 때는 의역을 택했다. 또 ‘사밧일(Sabbath day·안식일)’처럼 음역(音譯)하거나 ‘넘넌절(Passover·유월절)’ ‘누룩금하넌졀’(무교절) ‘올운쟈’(의인) 등 한글 친화적으로 번역한 것도 특기할 만한 점이다.

“한국인은 문학적 민족”

최초의 개신교 신자 이수정이 번역한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1885) 표지와 본문. 대한성서공회 제공

어두운 시대 상황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희망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한글 성경 수요도 급격히 늘었다. 번역 시도도 늘어 1887년에 한국어로 번역된 마가복음이 3종류(로스, 이수정, 언더우드 번역본)나 존재했다. 개화파이자 초기 기독교인인 이수정은 1885년 로스 선교사와 달리 식자층을 겨냥해 국한문 혼용으로 번역한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를 펴냈다.

개인 번역 성경과 더불어 ‘공인 성경’의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1893년 상임성서실행위원회(PEBC)를 조직해 ‘전임번역자회’를 구성했다. 여기에 소속돼 1900년 ‘신약젼서’ 등을 번역하고 ‘구운몽’ ‘춘향전’ 등을 영역한 제임스 게일 선교사는 ‘파나마 대운하’를 들어 번역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문장을 고르고 단어의 의미를 파헤치며… 선택하고 재어보고 판단하고 기록하는 모든 과정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파나마 운하를 파는 것과 맞먹는 일로 여겨진다.”

선교사와 한국인 번역자의 성경 번역이 활발해지자 ‘신 명칭(용어)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번역자와 단체에 따라 ‘텬주’(天主·쳔주교) ‘하나님·하느님’(로스역) ‘신’(이수정역) ‘상뎨’(上帝) 등으로 표기했고 각 용어에 대한 이해도 상이했다. 이 가운데 하늘의 신이란 의미에서 유일신으로서의 뜻을 더한 ‘하나님’ 표기의 선구자는 게일 선교사다. 그는 1911년 ‘셩경젼셔’ 출간 기념식에서 “하나님은 큰 한 분이며 지고자요 절대자로서 신비한 히브리어 명칭인 ‘나는 나다’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셩경 개역’(1938) 표지와 본문. 대한성서공회 제공

한민족을 ‘문학적인 민족’(a litarary people)으로 바라본 게일 선교사는 직역 대신 의역을 지지했다. 1922년 그는 교단 선교본부에 “나는 거룩하게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비문법적이고 어풍에 맞지 않는 ‘잡종 한국어’(mongrel korean)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편지를 보낸다. 게일 선교사의 번역은 당대 호응은 적었지만 1938년 발간한 ‘셩경 개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민현식 전 국립국어원장은 30일 “로스나 언더우드가 번역 시작 후 각각 한국어 문법서를 쓰고 사전이나 어휘집을 낸 것에서 이들의 언어 소양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며 “조선 계몽과 개화의 선구자 역할을 감당한 한글 성경의 영향으로 성도들은 나라의 책임 있는 지도 세력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시대·독자층 따라 번역은 계속된다

1938년 이후부터는 한국인 신학자의 번역 참여가 점차 늘었다. 한글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반영한 ‘개역한글판’(1952, 1961)을 펴낸 대한성서공회는 1993년 ‘성경전서 표준새번역’을 거쳐 1998년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을 펴냈다. 이 가운데 ‘고페르 나무’를 ‘잣나무’(창 6:14)로 표현하는 등의 오역과 ‘문둥병’을 ‘나병’으로 고치는 등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용어 등을 고쳤다.

한글 성경 번역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신약전서 새번역’(1967) 번역 작업에 동참한 박창환 전 장로회신학대 학장은 “성서는 시대와 독자층에 따라 번역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도 청소년·청년을 위한 번역이 각각 다르게 나올 수 있다면 유익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 모두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한글성경’(2021) 신약과 시편 표지. 대한성서공회 제공

대한성서공회는 다음 달 초 다음세대를 위한 새로운 성경인 ‘새한글성경’을 완역·출간한다. 이두희 대한성서공회 번역 담당 총무는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젊은이를 주 독자층으로 한 번역 성경으로 최대한 원문의 어순·어원을 고려해 직역하되 원문의 맥락에 맞춰 생동감 있는 우리말로 번역했다”며 “인명·지명을 비롯한 고유명사 음역을 교과서 기준에 맞추고 도량형의 번역을 현대화했으며 비하어는 삼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문에 맞는 낱말을 찾으려고 36명의 성서학자와 3명의 국어학자가 12년간 머리를 맞댔다”며 “여러 정성을 쏟은 이번 성경으로 하나님 말씀이 다음세대 독자의 마음에 힘있게 울려 퍼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