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뉴욕 유세에서 찬조연설에 나선 코미디언이 “푸에르토리코는 쓰레기 섬”이라고 조롱한 것을 두고 민주당이 대대적으로 역공에 나섰다. 라틴계 유권자들이 분노하는 가운데 하필 이번 대선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 푸에르토리코계 유권자들이 밀집해 있어 공화당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미시간주 유세 도중 취재진을 만나 트럼프의 유세를 언급하며 “트럼프는 미국인들이 서로 손가락질하도록 하고 증오와 분열의 불씨를 부채질하는 데 온 시간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푸에르토리코 발언을 겨냥해 “나는 상원의원 시절에도 허리케인 피해 등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사전투표를 마친 뒤 트럼프의 뉴욕 유세에 대해 “부끄러운 일”이라며 “어떤 대통령보다도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해리스를 지지하는 라틴계 슈퍼팩(정치자금 모금단체)은 펜실베이니아의 푸에르토리코 출신 유권자 수십만명에게 문제의 연설 영상을 보도록 권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들은 조지아와 미시간 등 다른 격전지의 푸에르토리코계 유권자에게도 문자를 보낼 계획이다.
문제의 발언은 전날 트럼프의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 집회에서 나왔다. 코미디언 토니 힌치클리프(사진)는 불법 이민자들이 몰려든 미국을 쓰레기통이라고 부른 최근 트럼프 발언을 언급하며 “푸에르토리코는 떠다니는 쓰레기 섬”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미국 언론에서 비판이 쏟아졌고 라틴계 팝스타 제니퍼 로페즈와 리키 마틴, 배드 버니가 곧바로 소셜미디어에 관련 영상을 올렸다. 하지만 힌치클리프는 소셜미디어에서 “사람들이 유머 감각이 없다. 나는 푸에르토리코를 사랑한다”며 사실상 사과를 거부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는 전체 유권자의 6%가 라틴계 유권자이며, 이 중 절반이 푸에르토리코계다. 펜실베이니아는 선거인단 19명이 걸린 최대 경합주로, 해리스와 트럼프가 1% 포인트 내 초박빙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푸에르토리코계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등을 돌리면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라틴계는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이 강했지만 이번 대선에선 경제문제 탓에 공화당으로 이탈한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트럼프가 라틴계에 공을 들이는 상황에서 ‘쓰레기 섬’ 막말이 대형 악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공화당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트럼프 캠프의 수석고문 다니엘 알바레즈는 성명을 통해 “(푸에르토리코 농담은) 트럼프나 캠프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동안 트럼프의 각종 설화에도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던 캠프가 이번에는 즉각 거리 두기에 나선 것이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