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스크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판세를 바꿔놓았다. 1943년 7월5일부터 8월23일까지 50일간 전투를 치르는 동안 독일군은 이곳에서만 85만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소련군도 사상자 18만여명의 병력을 잃었지만 미국의 막대한 군수지원에 힘입어 쿠르스크를 사수했다. 전투에 동원된 독일군과 소련군의 병력을 합치면 250만~340만명에 달했다. 6·25 전쟁 3년 동안 유엔군으로 참전한 16개국의 병사들과 의료지원 6개국의 인력을 모두 합친 인원이 195만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병력의 집중과 손실이었다. 히틀러는 스탈린그라드 대패에 이어 쿠르스크 전투도 실패하면서 전쟁의 주도권을 잃었다.
쿠르스크가 외부 세력의 공격을 받은 건 81년 만이다. 2차 대전 이후 처음이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년 6개월 만인 지난 8월 쿠르스크는 우크라이나의 기습공격에 무너졌다. 쿠르스크를 연결하는 교량을 폭파하고 드론을 앞세운 우크라이나군에 러시아 국경수비대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전선에 병력을 집중하던 러시아는 허를 찔렸다. 러시아 3대 원전 중 하나인 쿠르스크 원자력발전소와 유럽행 천연가스 관이 있는 이곳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반드시 탈환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그런데 푸틴의 대응은 우크라이나의 기대와 달랐다. 도네츠크 전선에서 병력을 빼는 대신 체첸군과 러시아 본토의 예비부대 등을 동원했다. 푸틴은 5만명의 병력으로 쿠르스크의 절반 정도를 탈환했다. 여기에 북한도 푸틴에 힘을 보탰다.
며칠 전 북한군 수천명이 쿠르스크에 도착했다. 북한의 파병 규모가 연말까지 1만2000명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의 판세를 바꿀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다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북한의 파병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반대급부로 러시아로부터 얻어내는 것이 무엇이든 한국의 안보에는 위협요인이다. 이 전쟁이 속히 종식돼야 할 또 다른 이유다.
전석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