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마비 딛고 카네기홀 무대 오르는 ‘선교사의 꿈’

입력 2024-10-30 03:03
최춘애 선교사가 최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신앙의 힘으로 피아니스트에 도전한 인생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소아마비로 평생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지만 포기 없는 노력과 신앙의 힘으로 세상의 차별을 극복하고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서는 이가 있다. 장애인 선교단체 ‘그레이스랜드’ 대표 최춘애(69) 선교사가 주인공이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 선교사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5년 만에 방문했다”며 “그사이 한국에도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크게 개선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최 선교사는 첫돌 무렵 소아마비를 앓아 하반신이 마비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6·25전쟁 발발 후 휴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시설도 매우 열악했다. 태어나자마자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그는 여섯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익히게 됐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아 피아노 페달을 밟을 수 없다는 이유로 수업을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갖 울분과 원망, 분노로 가득 차게 됐죠.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바보가 될 것 같아서 열여덟 살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저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더라고요.”

1978년 최 선교사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가 하나님을 만난 것도 그 무렵이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구의 손에 이끌려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한인교회에 출석했다. 교회 반주자로 섬기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끼게 됐고, 장애인 선교사로 남은 삶을 헌신하겠다고 고백했다. 그는 1981년 장애인 선교를 지원하기 위한 피아노 독주회를 열기도 했다. 이후 42년간 장애인 선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교육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도 충분히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어요. 교육과 지원이 있다면 장애인의 잠재력은 무한하다고 믿어요. 제가 수십년간 장애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그들의 자립을 돕는 사역을 이어온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최 선교사는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나는 그날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를 펴냈다. 그가 겪었던 고난과 좌절, 차별과 시련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앞서 지난해에는 한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다. 수상자 특전으로 다음 달 25일 예술가에게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그는 “하나님께서 저를 어두운 곳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항상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하셨다”며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온 제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