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야구(MLB) 월드시리즈에 또 다른 ‘언더독’ 이야기가 탄생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는 이 선수는 다름 아닌 뉴욕 양키스의 마무리 투수 루크 위버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그가 미국 최고 인기구단의 마무리 투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위버는 그저 그런 경력을 보내고 있는 선수 중 하나일 뿐이었다.
위버는 2017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출발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애틀 매리너스에 이르기까지 자리를 잡지 못한 유랑 생활을 이어갔다. 특히 선발 투수로의 성적 부진은 그를 중간 계투로, 결국 방출의 위기까지 몰고 갔다. 결국 지난 시즌 후 시애틀에서 방출됐고, 올 시즌을 앞두고 양키스와 1년 200만 달러에 계약하며 가까스로 선수 생명을 연장했다. 하지만 양키스로 온 후 위버에게 대반전이 일어났다. 시즌 내내 중간 계투로 견고한 모습을 보이더니 지난달 6일 마무리 투수로 나서서 생애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올 시즌 7승 3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2.89 탈삼진 103개로 시즌을 마친 위버는 포스트시즌에서도 뒷문을 든든히 지켜 양키스의 15년 만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올 시즌 그가 변화를 준 건 2가지다. 4심 패스트볼 그립을 바꾸면서 구속이 2마일 상승했다. 또 투구폼에서 레그킥을 줄여 투구의 일관성을 높였다. 하지만 기술적 변화가 모든 걸 설명하진 못한다. 동료들은 위버가 정신적으로 강인하고 경쟁심이 있는 선수라고 평가한다. 위버는 계속된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꾸준히 경기장을 지켰고, 결국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말을 위버가 증명한 셈이다. 위버는 “결과가 나빴을 때도 매일 경기장으로 나가는 것은 가장 힘든 일”이라면서도 “수없이 어려움을 맞닥뜨려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수들에게 실패는 두려움이지만 동시에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다. 반복된 실패는 좌절을 주지만, 실패와 맞서 싸우는 선수들에겐 성공의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미국프로농구(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꼽히는 르브론 제임스는 통산 득점 1위에 올라 있지만, 동시에 최다 야투 실패 기록도 가지고 있다. 가장 많은 실패를 했기에 가장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었던 셈이다. 기존에 이 기록을 가지고 있던 선수는 또 다른 레전드인 코비 브라이언트였다. 그들은 슛에 실패했을 때 좌절하지 않았다. 다음 슛은 꼭 넣겠다는 마음을 먹고 경기에 임했다. 미국 CBS는 “역대 최다 야투 실패 상위 27명은 모두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거나, 가입이 확실시되는 선수들”이라고 지적했다. NBA 최다 3점슛 기록을 보유한 스테픈 커리는 “실패한 슛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슛은 들어갈 때도 안 들어갈 때도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면 다시 한번 찬스가 올 것이며, 그때는 들어갈 것이다”고 슛을 쏠 때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했다.
위대한 선수들이 보여준 실패와 도전의 자세는 우리 삶에서도 큰 교훈을 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실패가 두려워 타석에 서지 않으면 삼진은 0이겠지만, 홈런도 0이 된다. 계속 삼진을 당해도 힘차게 스윙을 해야 홈런을 칠 가능성이 있다. 진짜 실패는 더 이상 도전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이다. 스포츠와 인생 모두에서 실패는 일시적인 좌절일 뿐, 더 나은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진정한 실패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때라는 것을 위버와 많은 스포츠 스타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김준엽 문화체육부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