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오염 공세 속 세계복음주의권이 응답한 ‘서울선언문’

입력 2024-10-30 03:07
제4차 로잔대회에 참석한 외국인 참가자들이 지난달 23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센터에 모여 토의하고 있다. 제4차 로잔대회 한국준비위원회 제공

지난달 한국에서 열린 세계복음주의권 올림픽 제4차 로잔대회는 서울선언문을 통해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 섭리를 거스른 죄”라고 천명했다. 문서 운동으로 세계 기독교에 신학적 유산을 남겨온 로잔대회가 동성애·동성혼을 비롯한 성오염이 거세게 밀려드는 세태 속에서 복음주의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겠다는 뜻을 선포한 것이다.

로잔대회는 지난 50년간 발표한 로잔언약(1차), 마닐라선언(2차), 케이프타운 서약(3차) 등을 통해 국제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신학적·선교학적 기틀을 마련했다. 교계 일각에서는 일터 선교, 기후 위기 등 현시대 선교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서울선언문이 동성애와 관련한 복음주의적 입장만을 유독 강조했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그러나 수십 년간 서구교회가 이 문제와 관련해 적극 대응하거나 방어하지 못해 초래된 어려움을 반면교사로 삼자는 의지를 서울선언문에 담은 것으로 보인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왜곡 지적

서울선언문은 4장 ‘인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고 회복되는 존재’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고유하게 지어진 존재이며 성 정체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을 명시했다.

그러면서 “성경은 남성과 여성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창조주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확언한다”며 “우리는 섹슈얼리티(성적 지향성)에 대한 왜곡을 탄식한다. 개인이 우리의 창조성과 무관하게 젠더를 결정할 수 있다는 개념을 거부한다. 우리는 성별 유동성(상황과 경험에 따라 성 정체성이나 성별 표현이 유동적이라는 주장)이라는 개념도 거부한다”고 밝혔다.

선언문은 또 “결혼의 범위를 벗어난 성관계는 창조주의 설계와 의도를 위반하는 죄악으로 선언한다. 동성 파트너십을 성경적으로 유효한 결혼으로 정의하려는 교회 내 모든 시도를 애통해한다”며 혼인 외 성관계와 동성혼에 대한 반대 견해도 분명히 했다.

교회의 치유하는 역할 강조

선언문은 신·구약 성경에서 동성애를 기술한 본문이 여섯 차례 군데나 있다고 밝혔다.(창 19:1~3, 레 18:20, 레 20:13, 롬 1:24~27, 고전 6:9~11, 딤전 1:9~11) 이 본문들은 동성 간 성관계가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표준을 위반하는 것으로 진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동성애자들을 치유하는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선언문은 “교회 안팎에서 동성에게 끌림을 경험하는 이들을 향해서는 목회적 돌봄과 건강한 사랑, 제자 훈련을 지원하라”고 촉구했다.

서구교회 답습 않도록 보호해야

4차 로잔대회의 서울선언문은 세계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로잔대회 공동대회장을 맡은 이재훈 온누리교회 목사는 최근 미국 기독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선언문을 통해 아시아·아프리카 교회가 서구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보호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교회는 유럽과 북미가 동성애 문제에 대해 너무 관대한 편이라고 생각하며 성경적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우려하고 있다”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사회와 교회가 그 길로 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서울선언문 내용을 둘러싼 이슈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것을 시사했다.

인간됨에 대한 정리 필요

구성모 한국로잔위 신학위원회 위원장은 “4차 로잔대회에서는 성 혁명 관련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하고 기독교 안에서도 걷잡을 수 없는 부분으로 다뤄져 많은 논의를 통해 인간됨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논의된 것”이라고 말했다.

진영에 따라 서울선언문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를 대하는 것은 다른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구 위원장은 “동성애자들이 전도 대상이며 이들의 구원 문제를 간과해선 안 된다”며 “국제 로잔이 성 혁명 관련해 최대치 범위 안에서 복음주의적으로 답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반성혁명 두고 치열한 고민 흔적 담겨

로잔대회가 폐막한 지 한 달이 지난 27일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일대에서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가 열렸다. 편향된 인권 옹호와 동성혼 합법화 분위기로 치닫는 세태 한복판에서 성경의 창조질서를 지켜나가겠다는 선포와 다짐을 하기 위해서다.

주연종 10·27 연합예배 운영위원장은 “4차 로잔대회 서울선언문에는 반성혁명과 관련해 심오한 고민의 흔적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로잔대회에 참가한 수많은 국가 가운데 반동성애라는 말조차도 못 꺼내는 곳이 상당하다”며 “선언문은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해당 국가들에도 긍정적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유연한 언어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전 세계 교계에 선순환 효과 기대

황화진 예장대신 총회 동성애대책위원장은 “일부 미흡한 면이 있지만 외국보다 분명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며 “다른 나라에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을 이 정도로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 교계는 물론 전 세계 교계에 선순환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아영 최경식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