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말론 향수와 향이 거의 똑같은 향수를 4.5파운드에 구매했다” “디올 가방 듀프(dupe)를 50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샀다”….
요즘 유튜브나 틱톡에 접속해 ‘dupe’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이런 체험이 담긴 수많은 영상이 뜬다. 복제품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Duplication’에서 유래된 듀프는 가성비 높은 대안 제품을 의미한다. 해당 콘텐츠는 저렴한 향수, 화장품, 의류를 상대적으로 비싼 정품과 비교하며 자랑하는 것들이다.
고가 브랜드 대신 유사한 기능을 가진 저가 제품을 찾는 ‘듀프(dupe)’ 소비가 확대되고 있다. 고물가에 전세계적으로 명품 소비가 둔화하는 추세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구찌, 보테가베네타 등을 보유한 케어링(Kering) 그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올해 실적이 지난해의 반토막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절반 규모인 25억 유로(약 3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8년 만에 최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루이비통, 디올 등을 보유한 LVMH는 올해 3분기 매출이 190억7600만 유로(약 28조3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3% 감소했다고 밝혔다. 최근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국내 가격을 20% 안팎으로 내렸으며,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생로랑도 가격을 약 3~15% 인하했다.
패션 부문에서 듀프 소비를 겨냥한 상품이 두드러진다. 유니클로 컬렉션은 크리스토퍼 르메르, JW앤더슨에 이어 최근 지방시 출신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클레어 웨이트와 협업해 패션 소비자들 사이에서 ‘르메르맛 유니클로’로 불린다. 이 외에도 ‘룰루레몬의 저렴이 버전 CRZ 요가’, ‘젠틀몬스터의 저렴이 버전 블루엘리펀트’ 등도 화제를 모았다.
뷰티 부문에서도 저가형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가성비 브랜드로 유명한 마녀공장은 상반기 미국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배(298%) 가까이 증가했다.
‘다이소 뷰티 부문’ 역시 올 1~9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160% 성장했다. ‘샤넬 립앤치크밤’과 기능이 유사한 저렴이 상품으로 입소문 난 ‘손앤박 아티스프레드컬러밤’은 출시 후 반년이 지난 지금도 인기다.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뷰티 대기업들은 다이소 전용 브랜드를 확대하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에는 뷰티, 패션을 넘어 스마트 워치, 무선 이어폰, 마우스 등 전자제품 영역으로 듀프 소비가 확장되고 있다. 샤오미, 낫싱 워치 등은 애플 워치 시리즈 10 46㎜ 최저가를 기준으로 가격 차이가 크게는 8배까지 난다.
값싸면서도 질 좋은 제품을 찾는 과정이 젊은층 사이에 새로운 소비 경험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진행된 미국 시장조사기관 모닝컨설트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젠지세대(Gen-Z) 응답자의 69%는 듀프 소비에 대해 ‘돈을 많이 쓰지 않고도 럭셔리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며 긍정적인 인식을 보였고, 51%가 ‘듀프 제품을 찾는 것을 즐긴다’고 답변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