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교육예산 전쟁’의 서막… 학생 수 줄어드니 줄이라는 건 단견

입력 2024-10-30 00:37
게티이미지뱅크

학생 줄어도 학급 수 큰 변동 없어
복지기능 강화… 학교 역할 커지고

교육 서비스도 1대 1 맞춤형 변화
장기적으로 막대한 예산 불가피

담배 한 갑 사려고 4500원을 내면 이 중 1450원은 지방세로 걷어갑니다. 1007원은 지방자치단체, 443원은 교육청 몫입니다. 담배값 10%를 학생 교육에 쓰고 있는 것이죠. 이를 담배소비세분 지방교육세(담배세)라고 부릅니다. 꽤 오래된 제도입니다. 김영삼정부 시기인 199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당시 정부는 대형 교육 개혁 프로젝트인 ‘5·31 교육개혁안’을 추진하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교육재정을 늘리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중 하나가 ‘한시적’으로 담배값 일부를 떼어 교육에 투자하는 방안이었죠.

그러다보니 기한을 매번 연장해야 했습니다. 지난 29년 동안 7차례 연장이 이뤄졌고, 올해 말 다시 기한이 도래했습니다. 담배세는 한해 1조6000억원 규모로, 교육청 세입의 1.7% 정도입니다. 적은 돈이 아닙니다. 교육의 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정도죠. 지자체들은 고령화로 인해 어르신들께 쓸 돈이 늘어나 더 이상 연장이 어렵다고 합니다.

교육계가 ‘8차 방어’에 성공할지, 지자체들이 돈을 가져갈지 아직 불투명합니다. 다만 교육 재정을 둘러싼 논쟁이 매년 격렬해지는 흐름인 것은 명확해 보입니다. 담배세 논쟁은 향후 국가 자원을 교육에 얼마나 투입할지를 두고 벌이는 큰 싸움의 서막으로 읽힙니다.

교육 예산을 둘러싼 논쟁의 출발점은 ‘학생은 주는데 교육 예산은 왜 줄지 않는가’일 겁니다. 국가가 걷는 세금의 일부분(내국세 20.79%)을 떼어 내 교육 재정에 투입하고 있는데 이게 과하다든지, 교육청들이 예산을 낭비한다는 등 비판은 학생 감소에서 파생되는 주장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에 토 다는 이는 없겠죠. 다만 학생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교육 예산도 줄여야 한다는 시각입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좀 더 들어가면 교육 예산을 깎으려는 ‘선동 구호’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학교는 학생이 교사와 만나 배우는 공간입니다. 배움이 일어나는 장소는 학급이죠. 교사를 배정하든 강사를 고용하든, 교보재를 사든 교육 예산 짤 때 우선적으로 고려할 사안은 학생 수보다는 학급 수가 될 겁니다. 그간 학생은 줄어도 신도시 개발 등으로 전체 학급 수엔 큰 변동이 없었습니다. 학급당 학생 수가 30명 수준의 과밀학급이 신도시를 중심으로 여전히 많습니다.

학교의 역할은 전보다 더 커졌습니다. 일단 복지 기능 강화가 꼽힙니다. 무상급식, 무상교복, 무상수학여행 등 ‘무상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과거에는 모두 학부모 부담이었죠. 이를 교육 예산으로 충당하므로 재정 지원은 더 두터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2019년부터는 고교 무상교육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고교 무상교육은 정부와 교육청, 지자체가 재원을 분담하는 구조로 시작했습니다. 내년부터 정부 부담 1조원이 교육청의 부담으로 넘어갈 공산이 큽니다. 교육청 예산이 한층 팍팍해지는 것이죠.

학교는 저출생 대책의 최전선이기도 합니다. 현 정부는 미취학 단계에선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통합하는 유보통합을, 초등 단계에선 학교의 방과후 프로그램과 돌봄 기능을 강화하는 늘봄학교를 추진 중입니다. 부모가 원하면 아침과 저녁, 주말에도 아이들을 학교에 맡길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학교의 기능이 대폭 확장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유보통합에선 지자체가 어린이집에 지원해오던 돈 1조6000억원이 교육 예산으로 전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늘봄학교도 향후 교육청 몫으로 넘어옵니다. 작년부터 고등·평생교육특별회계를 통해 초·중등에 쓰일 예산을 대학에 나눠주고 있으니 위아래에서 압박받는 형국이죠.

학교폭력 대응은 어떨까요. 학교와 교사가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던 과거 학교와 접근법 자체가 다릅니다. 사안 조사 단계부터 전문조사관을 투입하고, 변호사 비용을 지원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피해학생 치유도 교육 당국의 의무입니다. 최근 이슈가 된 교권 침해도 유사하게 고비용 구조가 되는 상황이죠.

교육 환경을 보는 눈높이도 달라졌습니다. 냉난방은 인권의 영역으로 과거 학교처럼 ‘찜통 교실’ ‘냉골 교실’에서 인내를 강요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안전도 필수입니다. 석면 제거 공사는 여전히 전국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내진설계는 기본이고, 사각지대를 없애는 범죄예방디자인도 적용되는 상황입니다. 학교가 공사에 들어가려면 임시로 쓸 ‘모듈러 교실’도 설치합니다. 학부모 세대 기억 속 컨테이너 교실과 차원이 다른 첨단 시설로 비싼 임대료를 지불합니다.

무엇보다 학교 교육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흥미와 적성, 진로 그리고 배우는 속도에 맞추는 교육 서비스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고교에선 내년에 고교학점제가 시행됩니다. 지역별 학교별 교육 격차를 줄이는데 상당한 재원이 투입돼야 합니다.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지역 소멸을 앞당기는 정책이 됩니다.

초·중·고 전체적으론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1대 1 학생 맞춤형 교육을 시도합니다. 영국 등 교육 선진국에선 학교 단위 혹은 교실 단위로 에듀테크(교육정보기술)가 보편화되는 흐름입니다. 한국도 내년에 AI 교과서를 도입합니다. 다만 교실을 고가의 디지털기기들로 채우고 학생에게 태블릿PC 쥐어 준다고 맞춤형 교육이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교사 양성과 연수, 보상 체계, 학생 평가 등 교육 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치는 작업입니다. 중장기적으로 막대한 예산이 필요합니다.

교육청도 고칠 부분이 많습니다. 동문회와 지역사회 눈치를 살피며 학생보다 교직원이 많은 ‘한계 학교’들을 방치하거나, 교육청 직속기관을 마구잡이로 늘려 자기 사람을 심는 행태 등은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선거용으로 살포되는 현금성 복지 정책도 반드시 짚을 문제입니다. 지적할 부분이 많지만 학생 잘못은 아닙니다. 낭비되는 부분을 찾아 시정할 일이지 교육 예산 자체를 줄이는 논거는 될 수 없습니다. 학생이 줄어든다고 교육 예산도 줄여야 한다는 것은 ‘단견’일 뿐입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