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정작 우리 자신을 볼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일상을 천천히 돌아보면 아침에 세안하고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거울을 보는 것 외에는 자신을 볼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모습을 볼 기회도 없지만 사실 우리 내면을 살필 기회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아상과 현실의 모습에서 상당한 괴리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신앙은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합니다. 하나님과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세울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본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경비대장들이 예수님을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멀찌감치 따라가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모여 있는 자리에 함께 앉습니다.
이 장면에서 베드로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선이 나옵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 이 문장에 다른 부연설명은 없지만 그 시선이 주는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주님과 베드로가 눈이 마주쳤을 때 주님의 시선은 원망과 분노의 시선이 아닌 갈대 같이 흔들리는 한 영혼을 바라보는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주님을 열심히 따랐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자부했던 베드로였습니다. 주님이 가는 곳이면 어떤 위험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따라가겠다고 했던 그였지만 새벽닭이 울기 전 주님을 세 번 부인하던 순간 두려움에 흔들리는 베드로의 눈은 주님의 눈과 마주치게 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님과 함께했던 모든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순간이었을 겁니다.
어느 시인은 사람의 눈이 혀만큼 많은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베드로는 자기가 얼마나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눈에 비친 갈대처럼 흔들리는 나약한 자신을 보았을 겁니다.
본문 62절엔 후회로 물든 베드로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라고 말입니다. 베드로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깨어짐의 순간이었지만 그 경험이 흔들리는 갈대 시몬에서 반석인 베드로로 다시 거듭나는 삶의 전환이었습니다. 신앙이란 이렇게 정직하게 자신을 마주하는 노력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거룩 자체와 마주칠 때만이 우리의 존재와 삶이 변하게 됩니다. 정직하게 하나님을 마주할 때, 말씀 앞에 겸손히 나아올 때, 우리는 자신을 보는 눈을 뜨게 됩니다.
여러분 인생 가운데 주님과 눈이 마주치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절망의 순간이든 좌절과 아픔의 순간이든 우리는 베드로를 바라보셨던 예수님의 눈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 있는 나를 보는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마주하고서야 흔들리는 갈대 같은 시몬에서 반석인 베드로가 된 것처럼 그때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시간이며, 우리의 삶이 온전히 주님의 능력의 손에 붙들리는 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김명규 목사(부산 포도나무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인 포도나무교회는 바인(Vine)이란 이름으로 부산 수영구에 있는 교회와 바인카페, 바인쉐어하우스,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에 위치한 바인서프로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공동체입니다. 신앙의 가치와 우월성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