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원·달러 환율 쉽게 하락 못하는 이유

입력 2024-10-29 00:32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크게 작용하며 한때 1300원 초반까지 하락했던 환율은 재차 강한 상승세로 전환됐다. 일반적으로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때 달러는 약세를 보이곤 한다. 미국 국채 보유 시 받을 수 있는 이자가 줄어들기 때문인데, 이는 달러의 매력을 낮추게 되면서 달러 약세, 즉 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곤 한다.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은 추가로 기준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점을 예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원·달러 환율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우선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미국 대선이다. 물론 결과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지만 여론조사 결과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우위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보다 미국 중심의 강한 성장을 강조하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작된다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미국과의 교역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시장이 미리 읽어내면서 대부분의 국가 대비 달러화가 강세를 이어가는 바, 원·달러 환율 급등 역시 글로벌 달러 강세의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의 수출 기조는 지난 수년 전과 달리 변화가 감지된다. 한국의 수출은 2000년대 들어 큰 폭 증가했는데, 대(對)중국 수출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각종 기술 발전 및 내재화, 경기 둔화 등의 변화가 나타나면서 국내 기업의 대중 수출 성장세는 과거 대비 약해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무역 적자를 기록하는 등 20여년 이상 이어졌던 대중 수출 특수의 효과가 조금씩 약해지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대중 수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수출 시장을 개척할 수밖에 없는데 글로벌 국가들 중 가장 탄탄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는 대미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게 된다. 대미 수출 성장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는 당연히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그 정책 변화의 맥락에서 미국 대선이 과거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회자되는 ‘미국 예외주의’ 역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궤도로 복귀했다. 이후 경제 성장세는 그 어느 국가보다 탄탄했고, 주식시장을 비롯한 미국 자산 가격은 꾸준한 우상향 기조를 보였다. 이에 전 세계 투자자들의 미국 투자 기조는 지속적으로 강화됐는데, 국내 개인투자자 역시 ‘서학개미 급증’으로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이외에도 미국은 해외에 나가 있던 미국 기업들을 국내로 끌어들이는 ‘리쇼어링’뿐 아니라 해외 기업이 미국에 공장 등의 설비를 구축했을 때 각종 세제 혜택 등을 주는 정책을 도입해 국내 기업들의 미국 투자 증가 역시 함께 이끌어냈다. 국내 개인 및 기업의 대미 투자 증가는 국내 투자자의 달러 수요를 끌어올리게 된다. 이는 과거 대비 구조적인 달러 수요 증가를 의미하며 달러 강세, 즉 원·달러 환율의 레벨 자체가 상승했을 가능성을 나타낸다.

미국의 금리 인하는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달러 약세, 즉 원·달러 환율에는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은 미국의 대선 이슈와 과거 대비 높아진 대미 성장 의존도, 그리고 대미 투자 증가 기조는 달러 강세, 즉 원·달러 환율 상승 요인이 된다. 환율 상승과 하락 요인의 첨예한 충돌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 대비 높은 환율의 변동성은 현재진행형으로 보인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