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레드라인 넘은 북·러, 신중히 대응할 때

입력 2024-10-29 00:34

우크라이나 정부가 제기해 온 북한 인민군의 러시아 파병설이 국가정보원과 미국의 확인에 의해 현실로 드러났다. 러·우 전쟁 직후부터 북한은 러시아를 일방적으로 지지했으며, 탄약과 무기류를 제공해 왔다. 그동안 민간군사기업(PMC)이나 개별적 차원의 용병 또는 자원병들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편에 가담한 적은 있으나, 국가 단위의 파병은 북한이 처음이다.

러·우 전쟁이 국제전으로 확전되는 셈이며, 그 영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인민군 파병으로 심각한 병력자원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는 한숨을 돌리게 되며, 양측 간 군사협력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사실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미국의 무제한적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와 달리 러시아의 경우 군사협력 대상이 마땅치 않다. 미국과 나토의 눈치를 봐야 하는 중국도 러시아에 군사적 지원은 하지 않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6월 평양을 방문해 북한과 준동맹조약을 체결한 이유다.

인민군 파병 대가로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외화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며 현대전의 전략전술적 정보와 경험을 축적할 것이다. 특히 러시아는 군사강국이라는 점에서 핵과 미사일, 인공위성 등 첨단 군사기술은 물론 북한의 재래식 전력의 현대화를 지원할 가능성도 있다.

북·러 양측의 부담도 발생한다. 인민군 파병에 대응해 나토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병력 파견을 검토할 수 있으며, 무기 추가 지원 및 장거리 공격 사용을 허가할 수도 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확대할 가능성도 러시아에는 고민이다.

러·우 전쟁이 대규모 소모전이라는 점에서 파병된 인민군의 상당수가 전사 및 부상 등에 직면할 우려가 있다. 베트남전 한국군 파병 사례로 볼 때 보충병 및 교대 등 인민군 파병 규모가 1만2000명에 그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북한이 소모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북한에 비해 자유로운 국가라는 점에서 파병 인민군들이 귀국할 경우 체제 내 변화의 요소로 작용할 개연성도 있다.

러시아 파병 인민군은 후방 침투 및 기습 등에 특화된 북한 특수작전군 소속 폭풍군단으로 알려져 있다. 전장은 북한과 달리 산악이 아닌 평지이며, 폭풍군단의 경보병 무장 수준으로 숙련된 우크라이나군을 상대해 전투력을 발휘할지도 의문이다.

미국은 파병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인민군의 역할에는 유보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인민군 참전은 그 자체로 한반도 안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장 현대전 경험을 축적한 인민군은 우리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되며, 러시아가 인민군 현대화를 지원해도 우리의 부담은 가중된다. 북한 주민은 헌법상 잠재적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에서 파병 인민군이 귀순의사를 밝힐 경우 우리의 권리와 의무가 발생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인민군 러시아 파병에 따른 다양한 시나리오에 기반해 상응하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당장의 과제는 북·러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통해 양측이 선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며, 인민군이 최전선의 전투병력으로 참전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인민군의 전투 참여 여부, 전장 상황에 대한 영향력 정도에 따른 단계적 대응방안 마련이 요구된다.

인민군의 러시아 파병으로 우리는 원치 않게 러·우 전쟁에 연루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제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며, 적절한 관여를 통해 국익을 관철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경우든 러·우 전쟁이 남북한의 대리전으로 비화하거나, 한반도에 직접적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정부의 대응 방향에 대해서는 벌써 여론이 갈리고 있다. 안보에는 진영의 차이와 여야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할 때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