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하모니로 세상과 소통… 장애인들 꿈을 찾다

입력 2024-10-29 03:05
루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난 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제2회 정기연주회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루아 오케스트라 제공

청명한 가을 날씨가 완연했던 지난 21일. 충북 청주에 있는 루아 오케스트라 연습실이 있는 건물에 들어가자 현악기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바이올린부터 첼로, 콘트라베이스까지 20대로 보이는 청년들은 지도 강사와 함께 연습에 한창이었다. 여러 악기가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웅장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이면엔 단원 한사람 한사람마다 특별한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

‘최초’라는 책임감

루아 오케스트라는 반도체 전문기업 네패스(회장 이병구)가 장애인 고용 창출의 목적으로 2022년 11월 창단됐다. 중증 발달장애인 예술인 20명으로 구성됐으며 장애인들의 안정적인 고용과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꾸준한 예술 활동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루아 소속 단원들은 모두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충북 최초의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로 알려진 루아는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놓인 편견의 벽을 허물기 위한 장애인식 개선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단원들은 연주자이기에 앞서 정식 네페스 루아 오케스트라에 정식 채용된 직원이기도 하다. 갈수록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두되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업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루아는 장애인 채용을 넘어 이들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훈련시키고, 완전한 자립을 돕는 것이 목표다. 루아는 창단 이후 2년여간 네페스의 각 사업장과 지역 관공서, 특수학교 등을 돌며 130차례가 넘는 공연을 선보였다.

루아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김남진 예술감독은 “루아 단원들이 연주자로서 충분한 소양을 갖출 수 있게 만들어가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며 “루아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비장애인보다 에너지가 2~3배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루아만이 선보일 수 있는 음악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소리로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 2일에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정기 연주회를 개최했다. ‘기뻐 외치다(Shout with joy)’를 주제로 열린 연주회는 루아 오케스트라의 첫 유료 공연으로 그동안 발달장애인 단원들이 쌓아온 성과를 관객들과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단원들은 클래식 영화음악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발달장애인들이 꾸는 꿈
루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난 21일 충북 청주에 있는 연습실에서 지도강사와 함께 악기 연주 연습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단원들은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정지훈(22)씨는 2022년 9월 입단했다. 정씨가 입단하기 전 다룰 줄 아는 악기는 기타밖에 없었다. 루아 오케스트라에 들어와 처음으로 콘트라베이스를 배웠다. 현악기 가운데 가장 큰 악기이자, 낮은 음역을 가진 콘트라베이스는 정씨의 둘도 없는 단짝이 됐다. 그에게 연습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던지자 20대 청년의 에너지가 담긴 답변이 돌아왔다.

“악기 연습이 물론 쉽지는 않아요. 강사님이 가르쳐줘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콘트라베이스는 오케스트라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연주할 때도 모든 악기를 감싼다고 생각하면서 해요. 기초적·기술적인 부분도 더 연습해서 잘하고 싶어요.”

루아의 리더 조서연(24)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외할아버지의 추천으로 들어온 루아는 조씨에게 첼리스트라는 꿈을 선물했다.

그는 “루아에 입단 후 잃어버린 꿈을 되찾은 기분”이라며 “루아가 지금보다 성장하는 오케스트라가 되길 바란다. 나도 리더로서 단원들을 잘 이끌어가고 싶다”고 했다.

정씨는 훗날 음악인을 위한 카페를 만들어 함께 생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만약에 기회가 된다면 음악인을 위한 카페를 열고 싶어요. 각자 예술인이 걸어온 시간과 삶을 나누면서 음악으로 소통하고 싶어요. 카페는 많지만 음악인을 위한 곳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언젠가는 저도 ‘예술인 정지훈’으로서 살아왔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조씨는 “루아에 입단 후 삶의 활기를 되찾았다”며 “많은 분이 루아에 관심을 두고 직접 공연을 보러 와주면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연말에도 공연이 꽉 차 있다”며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악기를 배워서 음을 내고 그 소리를 하나하나 합쳐 하나의 곡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전했다.

청주=글·사진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