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의 오프로드 레이싱 랠리카인 GR야리스가 굉음을 내며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의 행사장을 가로질렀다. 차량은 360도 회전하는 드리프트 등 현란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타이어 마찰로 피어오르는 희뿌연 연기가 걷히고, 차량 운전자와 동승자가 헬멧을 벗고 관중 앞에 서자 환호성이 터졌다. 운전자는 토요타그룹 토요다 아키오 회장, 동승자는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었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 1위, 3위 두 총수가 공개석상에서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현대차는 27일 오후 모터스포츠 문화 발전을 위해 토요타자동차와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현대 N x 토요타 가주 레이싱(GR)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12년 만에 한국을 찾은 아키오 회장은 “사랑해요”라는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 뒤 “현대차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해낼지 몰랐다. 올 초 정 회장과 만나고 함께 행사를 열자는 제안에 즐거워했는데, 10개월 후 실현됐다”고 말했다. 이에 정 회장은 “아키오 회장은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며 “‘심장을 뛰게 하는 운전’의 재미를 토요타 레이스 분야와 함께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정 회장과 아키오 회장은 트랙 선두에서 아이오닉 5N 드리프트 스펙, GR야리스 랠리1 하이브리드 차량을 각각 직접 운전해 트랙을 천천히 주행하는 ‘퍼레이드 랩’을 이끌었다. 이날 행사에는 양사 관계자, 일반 고객, 인플루언서 등 3000여명이 참석했다. 각 사의 월드랠리팀 경주차가 실전 랠리 같은 주행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쇼런과 더불어 고객들이 직접 경주차의 성능을 느낄 수 있는 ‘택시 시승 체험’ 등 다양한 드라이빙 체험 행사가 준비됐다.
현대차 부스에는 지난 25일 최초로 공개된 차세대 전동화 비전을 담은 움직이는 연구소인 ‘RN24 롤링랩’ 차량이 전시됐다. 또 배터리 모터와 수소연료전지를 결합한 수소 하이브리드 롤링랩 N비전74 등이 전시됐다. 토요타 부스에는 일본 만화인 <이니셜D>에 등장해 ‘AE86’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 ‘스프린터 트레노’ 기반의 수소 콘셉트카와 고성능 내연기관 모델인 GR수프라와 GR86 등이 전시됐다.
실제 이틀 전 두 회장은 서울에서 비공개 만남을 갖고 수소차 생태계 구축 방안 등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키오 회장은 “토요타와 현대차가 함께 손잡고 더 나은 사회 그리고 모빌리티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싶다”고 밝혔다.
다른 재계 총수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옛 한국타이어 그룹) 회장도 정 회장과 인사를 나눈 후 현대차와 토요타 테스트 드라이버들의 운전을 관람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행사의 의의에 대해 “오늘 행사는 순수한 모터스포츠의 재미를 국내 고객들에게 알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도 “앞으로 모터스포츠 분야를 넘어 미래 기술 협력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토요타 수장을 만난 것도 전장 사업을 확대하고 완성차 업계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용인=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