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알뜰폰 시장 진출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자 통신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영세사업자가 대기업에 밀려 생존을 위협받는 실태를 개선하겠다는 취지지만 오히려 소비자 편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알뜰폰사업자(MVNO)의 시장점유율을 기업 규모에 따라 제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대기업 산하 알뜰폰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도록 강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기업이 독립된 알뜰폰사업자를 인수하거나 자회사를 새로 만들어 시장에 진입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김 의원은 “이동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 자회사의 점유율이 절반 수준에 육박하며, 최근에는 KB국민은행을 필두로 시중은행의 알뜰폰 사업 진출이 차례로 이루어지고 있는 등 거대 자본의 알뜰폰 시장 장악이 점차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소 알뜰폰 사업자 및 이동통신서비스 재판매 시장의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하려 한다”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알뜰폰 시장에는 수십개 업체가 난립해 경쟁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것은 대기업 산하 자회사 6곳이다. 지난해 말 기준 통신 3사의 자회사 5곳과 KB국민은행이 운영하는 ‘KB리브엠’ 등 6개 업체의 합산 시장점유율은 52%다.
하지만 대기업 산하 알뜰폰사업자들은 실제로 큰 수익을 내지는 못한다.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는 곳이 대다수다. 특히 KB리브엠은 2019년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난해까지 605억원의 누적 영업적자를 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알뜰폰 자회사가 벌어오는 돈은 마이너스지만, 모기업에 대한 광고 효과나 상품 연계 등 가능성을 보고 영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업계에서는 대기업 규제 움직임에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실효성도 낮을뿐더러, 되레 시장 경쟁력을 낮출 수 있다는 지적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영세 사업자를 살리고 싶다면 소비자들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맞는다”며 “해외에서는 알뜰폰 사업자들이 대형마트나 가전회사 등과 연계해 소비자 풀(pool)을 만들려 노력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저가 경쟁 말고는 이렇다 할 전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비자 편익도 침해될 수 있다. 알뜰폰은 요금제가 저렴한 대신 고객센터 연결이 어려운 등 고객서비스(CS) 품질이 낮다는 평가가 많다. 그나마 대기업 산하 알뜰폰사업자가 24시간 고객센터 연결 등 일정 수준 이상의 CS를 제공해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 영업을 제한한다고 해서 무조건 소비자 편익이 커지지는 건 아니다”라며 “섣불리 알뜰폰 시장을 규제하면 소비자들의 선택권만 좁아지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