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윤수일은 1970년대 서울 회현동 제2시민아파트에 살았다. 당시로선 드문 아파트 문화를 접한 덕에 82년 노래 ‘아파트’를 선보일 수 있었다. 70년대 말 강남 개발 붐으로 아파트 관심이 본격화할 때였다. 아파트에 살던 여친과의 이별로 인한 친구의 슬픔을 표현했는데 정작 흥에 겨운 리듬과 가사가 인기였다. 시기도 내용도 좋았다. 중년이라면 학창 시절 노래 도입부의 “빠빠빠 빠라바라바”를, 가사 중간중간에 “으쌰라 으쌰”를 외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90년대 술집·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 1위를 독차지했고 응원가로도 자주 쓰였다. 아파트가 주거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2000년대에도 생명력은 이어졌다.
다만 외국인에겐 한국의 아파트는 낯선 대상이었다. 콘도를 뜻하는 ‘아파트먼트(Apartment)’에서 유래됐지만 한국에선 의미가 전혀 달라서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였던 헨니 사브나이에는 “세계 어디에도 고층 아파트 건물로 이뤄진 마을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파트촌을 슬럼가로 여긴 이들도 있었다. 거대한 서울 아파트 단지에 놀란 프랑스의 발레리 줄레조 교수는 ‘한국의 아파트 연구’란 책을 썼다. 아파트는 한국인의 영토 부족에 대한 강박관념을 해소하고 현대적 삶을 상징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인과 외국인 간 쉽게 와닿지 않던 아파트의 거리감을 MZ세대인 블랙핑크 로제가 멋지게 이어줬다. 유명 가수 브루노 마스와 협업한 싱글곡 ‘APT.(아파트)’는 술자리 게임을 주제로 하며 남녀가 아파트에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내용을 담았다. 공개 일주일 만인 25일 유튜브 조회 수가 1억3000만회를 넘었고 글로벌 음원차트를 휩쓸었다. 열기가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연상케 한다. 덩달아 40년 넘은 윤수일의 ‘구축’ 아파트도 인기몰이 중이다. 강남을 한국 아파트 문화의 리더로 본다면 윤수일의 아파트-강남스타일-로제의 아파트는 ‘K-아파트’의 연결고리가 아닐까 싶다. 세대를 넘나든 아파트 열풍이 세계를 홀리고 있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