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에 연일 지적 당한 ‘尹 명예훼손 사건’ 검찰 공소장

입력 2024-10-25 01:11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허위 인터뷰 의혹’을 받는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왼쪽) 씨와 전 언론노조위원장 신학림 씨가 6월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이른바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보도’ 사건 재판부가 연일 검찰 공소장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검찰이 공소유지에 진통을 겪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이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10개월간 대대적으로 수사해 기소한 사건이지만 재판부는 ‘공소장이 명확하지 않다’고 거듭 지적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허경무)는 22일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 등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 2차 공판에서 “기소의 핵심인 허위사실이 명확히 특정 안 됐다”며 “구체적으로 기사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결합해 허위사실을 구성하는지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앞선 기일에도 공소장을 수정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피고인 인적사항, 범행 동기 등 전제 사실이 과도해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검찰이 기소할 때 법관에 예단을 갖게 할 만한 내용을 공소장에 첨부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다.

검찰은 재판부 지적에 70쪽 분량 공소장을 50여쪽으로 줄였지만, 허 재판장은 여전히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때 법원이 써야 할 부분까지 공소사실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실체 판단에 들어가도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가 해소되지 않으면 공소기각 판결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며 “특히 핵심 피의사실이 특정되지 않은 공소장으로 재판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24일 기자들에게 “재판부 의견을 경청해 (공소장을) 앞으로 더 검토할 예정”이라며 “공소사실은 향후 증인신문, 서증조사 등 절차에서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법원 내에서는 최근 검찰 공소장이 과도하게 전제 사실 등을 담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황정수 서울남부지법원장은 지난 22일 국정감사에서 ‘신 전 위원장 재판의 공소장 논란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의에 “솔직히 (검찰의) 편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혐의 사실 입증이 까다로운 사건의 경우 검찰이 공소장에 전제 사실을 자세히 담아 심증을 형성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취지다.

법원이 주요 사건에서 공소장 일본주의 문제로 공소기각 판결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대책 마련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근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검사가 법원의 시정요구에도 조처를 하지 않는 경우 법원이 문제 된 부분을 공소사실에서 삭제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