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무대에 데뷔해 21년 동안 1000번 넘게 프로야구 마운드에 오른 사나이. KBO리그 투수 최다 출전이자 단일 리그 아시아 투수 가운데 역대 가장 많이 마운드에 선 철완(鐵腕). 2004년 인천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의 좌완 투수로 데뷔하고 현재 대전 한화 이글스 플레잉코치(선수 겸 코치)인 정우람(39) 얘기다.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한결같이 감독의 부름을 받고 팀을 위해 공을 던진 투수와 인터뷰하는 동안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은퇴했으나 여전히 후배들과 함께 하는 그를 지난 23일 충남 서산시 한화이글스2군훈련장에서 만났다.
정우람은 데뷔 시즌 1군에서 단 2경기에 출전했다. 이후 혹독한 2군 생활을 했다. 마침 데뷔 경기 상대가 현 소속팀인 한화였다. 2004년 4월 21일 문학에서 구원으로 마운드에 올랐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정우람은 “문학에서 던졌고, 점수는 안 줬는데 여러 타자를 상대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2⅓이닝 동안 여덟 타자를 맞아 볼넷 2개를 내줬다. 이걸 시작으로 2024년 9월 29일 은퇴 경기를 위해 1군 특별 엔트리로 선발 등판해 1명의 타자를 상대하기까지 1005번의 경기를 치렀다. 21년 동안 977⅓이닝을 책임질 거라고는 초년병이던 정우람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프로 2년 차 때 완전히 눈을 떴다. 2005년 59경기, 2006년 82경기 등 군 복무(2013~2014시즌) 기간과 올해를 제외한 18시즌 동안 매 시즌 평균 50경기 이상 등판했다. 한 시즌 144경기 기준으로 보면 3경기에 1번꼴로 출전한 셈이다.
시속 140㎞ 초반의 빠르지 않은 직구와 슬라이더를 무기로 타자들을 요리했다. 특유의 숨김 동작과 공 회전력으로 헛스윙을 유도했다. 정우람은 “신체조건(181㎝)이 뛰어나지 않아 몸 관리에 특히 신경 썼다. 손톱, 손끝 감각, 심지어 치아까지 예민하게 챙겼다”고 말했다. 그는 데뷔 때부터 현재까지 한결같은 몸매를 유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프로 생활 내내 몸무게 변화가 5㎏ 내외에 불과할 정도로 식단 관리와 근력 운동을 철저히 했다.
통산 4058타자를 상대해 814개의 안타를 맞으며 371점(345자책)을 내줬다. 볼넷은 360개, 삼진은 937개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3.18에 불과하다. 이보다 더 안정적으로 뒷문을 책임진 투수는 리그 역사상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의 중간계투로 ‘SK 왕조’ 시절을 함께 했다. 2008·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만 2개. 2009·2011·2012년엔 준우승을 경험했다. 개인 기록도 화려하다. 역대 두 번째 100홀드·100세이브(145홀드·197세이브), 2008년 85경기에 출전해 투수 한 시즌 최다 출전 타이, 역대 최연소(만 25세11개월17일)·최소 경기(430경기) 100홀드 등 각종 기록을 세웠다.
가장 소중한 건 역시 1005경기라는 최다 출전 기록이다. 정우람은 “970경기에 등판했을 때부터 욕심이 났다”며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관리하면서 출전 기회를 잡아 달성하고 싶었다”고 했다.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군 제대 후 뒤늦게 태극마크를 달아 2015년 열린 제1회 프리미어12 우승, 2018 아시안게임엔 선수단 최선임으로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련도 있었다. 2007년 SK의 창단 첫 통합우승 때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그해 정규시즌 45경기에 나서 14홀드를 기록, 제 역할을 했다고 스스로 평가했으나 엔트리에서 제외되자 서운함이 밀려왔다. 정우람은 “아쉬움이 있었으나 당시 김성근 감독님이 새로운 구종을 공부하고 오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체인지업을 연습했다. 직구와 슬라이더만으론 안 된다고 판단했던 거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2008년 보란 듯이 한국시리즈 5경기에 모두 출전해 2승 2홀드를 올리며 우승(4승1패)에 기여했다.
2016년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한화에 합류해 9년을 뛰었다. SK가 프로 생활의 고향이라면 한화는 ‘제2의 고향’이다. 2021년까지 6시즌 동안 붙박이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한화가 3위로 가을야구에 진출한 2018년 35세이브로 세이브왕에 등극했다. 한화에서 가을야구 경험이 이때 한 번뿐인 게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대전에서는 어딜 가나 한화 팬이 반겨줬다.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한화 팬들에게 항상 고마웠지만, 성원에 비해 성적을 못내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대전 홈구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많이 울었다. 정우람은 “은퇴사를 준비할 때부터 눈물이 났다”며 “동료 선수들, 감독님 등 코칭스태프,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그동안 사랑만 받은 것 같아 행복했다”고 말했다.
정우람은 올 시즌 2군에서 잔류군 선수들을 가르치는 데 매진했다. 그동안 터득한 노하우와 프로 선수의 자세에 대해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요즘 선수들은 빨리 던지려고만 한다. 그러나 빨리 던지는 것보다 오래 던질 수 있도록 알려주고 있다”며 “비록 2군에 있지만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후배들이 오랫동안 선수 생활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엉뚱한 면도 있다. 2022년 겨울에 아내와 함께 집 근처에서 붕어빵 장사를 했다. 어린 시절 맛있게 먹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버킷리스트를 실현해보고 싶었다. 비시즌 동안 몇 개월을 장사했다. 그는 “밖에 오래 서 있으니 너무 추웠고 붕어빵 만들기도 쉽지 않아 많이 태워 먹었다”며 “마스크 쓰고 모자를 눌러썼는데도 몇몇 분이 알아봐서 누구한테 얘기하지 말라고 했더니 진짜 안 하더라. 좋은 경험이었다”며 웃었다.
철완, 고무팔, 대장독수리 등 별명도 참 많다. 정우람은 “한화에서 뛰면서 가장 최근에 생긴 대장독수리라는 별명이 좋다”며 “한화 팬들이 지어준 별명이라 더 소중하다”고 했다.
정우람의 ‘행복 야구’는 계속된다. 플레잉코치 이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한화와 정식 코치를 논의하고 있으나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코치 외 다른 일도 구상 중이다. 그는 “다음 달까지 마무리 훈련이 계속되니 지금처럼 후배들과 함께하다가 겨울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고민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도 한화의 가을야구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정우람은 “문동주, 김서현, 황준서 등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고 있고 고졸 신인 정우주도 합류했다”며 “내년부턴 새로운 구장에서 경기하면서 성적이 좋아질 거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서산=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