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골프투어에는 흥행을 이끄는 엔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강력한 양강체제를 구축, 매 대회에서 명승부를 펼쳐 팬들을 매료시킨다는 점이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는 1960년대 골프를 메이저 스포츠로 격상시킨 아널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를 시작으로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이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는 여자골프의 전성기를 이끈 안니카 소렌스탐과 카리 웹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는 남자 골프의 새로운 장을 연 최상호와 박남신, 한국여자골프를 세계 최강의 반석에 올린 박세리와 김미현이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쌍두마차들이다.
투어의 성패는 이들과 같은 스타 플레이어의 출현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모든 투어가 스타 플레이어 탄생을 학수고대하는 이유다. 중흥을 꿈꾸는 KPGA투어도 예외는 아니다. 최경주(54·SK텔레콤)와 양용은(52) 이후 스타 플레이어는 사실상 맥이 끊긴 상태다.
그런 KPGA투어에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대형 스타’로 성장이 예상되는 라이벌이 나타났다. 장유빈(22·신한금융그룹)과 조우영(23·우리금융그룹)이다. 둘은 국가대표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경쟁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두 선수는 2023년에 나란히 아마추어 신분으로 KPGA투어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조우영이 4월에 골프존오픈에서 먼저 우승하자 장유빈은 7월 KPGA군산CC오픈 우승으로 화답했다.
아마추어 시절엔 한 살 형인 조우영이 앞서 나갔지만 프로 무대에서는 반대였다. 장유빈은 지난 7월 KPGA투어 군산CC오픈에서 타이틀 방어로 프로 데뷔 첫 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지난 13일 막을 내린 백송홀딩스 아시아드CC 부산오픈에서 시즌 2승에 성공했다.
장유빈의 우승에 가장 기뻐한 것은 조우영이었다. 한편으로는 자극제도 됐다. 그리고 그 기운을 받아 지난 20일 강원도 양양군 설해원 레전드코스(파72)에서 막을 내린 KPGA투어 더 채리티 클래식에서 마침내 조우영은 프로 데뷔 첫 승을 거뒀다.
조우영의 우승에 가장 먼저 달려와 축하를 해준 사람은 장유빈이었다. 당시 장유빈의 축하 첫 마디는 “우리 형 결국 해냈네”였다. 마치 본인이 우승한 것처럼 기뻐했다.
조우영은 “(장)유빈이와 나는 뗄 수 없는 관계이자 선의의 경쟁자이면서 최고 라이벌”이라며 “우승이 확정되자 유빈이가 가장 먼저 달려와 축하해줬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동안 성적이 좋지 못해 아쉬웠던 것들이 싹 날아갔다”고 했다.
둘은 경쟁을 치열하게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조우영은 최근 출전한 3개 대회에서 한 차례 우승 포함, 모두 ‘톱4’에 입상했을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다. 장유빈의 조언 덕이었다.
조우영은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부터 유빈이의 조언대로 퍼터를 블레이드형에서 말렛형으로 들고나와 성적이 좋아지고 있다. 정말 고맙다”면서 “유빈이가 농담조로 내가 탄 상금에 본인 지분이 어느 정도 있다고 내놓으라고 하더라”고 활짝 웃어 보였다. 장유빈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조우영에게 줄곧 말렛형 퍼터를 사용해 보라고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우영은 둘의 라이벌 구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유빈이가 상승세였을 때 나는 하락세였다. 한편으로 동생이 부럽기도 했다”면서 “유빈이가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좋았지만 솔직이 쫓기는 마음이 없었던 것 아니다. 아마도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우승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올 시즌 목표는 내친김에 남은 3개 대회에서 승수를 더 추가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4일 DP월드투어와 KPGA투어 공동 주관으로 열리는 제네시스 챔피언십에 거는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선수들과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골프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는 DP월드투어와 공동 주관으로 열리는 만큼 해외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지금 내 위치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양양=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