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Reformation 종교개혁

입력 2024-10-25 00:31

벌써 20여 년 전이다. 독일에서 석사 졸업시험을 볼 때다. 하루에 한 과목씩 시험을 보는데 교회사 시간이었다. 3시간 동안 펜 하나를 가지고 한 주제로 논술을 하는 시험이었다. 시작과 함께 문제가 나왔는데 거기에는 딱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Reformation.’ 직역을 한다면 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교회사 시간이니 종교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다른 설명이 없다. 그때부터 출제자의 의도를 찾아야 했다. 아마 출제자는 개혁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하게 교회의 개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개혁이라는 넓은 의미에서 시작해서 종교개혁으로 이끌어 와서, 내가 생각하는 종교개혁에 대해 서술했던 기억이 있다. 상당히 오래된 일인데 아직도 그 문제를 받았을 때의 암담함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리고 내내 곱씹어 보는데, Reformation이라는 단어를 누가 단순히 개혁이 아니라 종교개혁이라고 덧붙였는지 궁금했다. 아마 개혁이라는 단어로는 다른 세계에 있는 우리의 이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 같아서 덧붙였을 것이다.

종교개혁은 단순하게 교회의 개혁에 멈추지 않았다. 이를 통해 역사의 한 매듭이 지어졌다. 그것도 1000년 중세시대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럽의 세계는 기독교 공동체였다. 로마제국의 영광을 계승하고 있었고, 신성로마제국으로 묶여 있었다. 비록 언어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문화가 달랐지만 유럽은 기독교라는 하나의 종교로 통일돼 있었다. 그리고 그 기독교는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로 연합돼 있었다.

루터로 상징되는 종교개혁은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면서 시작됐다. 가톨릭교회는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만 보도록 했다.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은 금지됐고, 이를 어길 경우 이단으로 몰아 사형에 처했다. 이로써 일반 성도들이 성경을 읽을 수 없도록 했다. 교육사회학의 측면에서 보면 언어장벽을 통해 사람들이 성경 지식으로 접근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라틴어로 유럽은 하나의 세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종교개혁은 이 벽을 허물었고 교회는 유럽의 보편교회에서 민족교회로 전환됐다. 교황과 황제의 오랜 싸움은 끝이 나고 교회는 지역 성주와 협조하게 됐다. 루터는 이를 두 왕국론으로 정리했다. 하나님이 정부에 율법과 칼을, 그리고 교회에는 복음과 사랑을 줬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이 둘을 다 사용하신다고 정의했다. 이를 통해 교회의 세상 지배로 상징되던 중세시대는 끝이 나고 교회와 정부가 함께하는 근대가 시작된다.

독일의 괴테는 ‘독일인들은 루터에 의해 하나의 민족이 됐다’고 정의했는데 맞는 말이다. 종교개혁 이후 독일인들은 그 민족 정체성을 가지게 됐다. 물론 다른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로써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됐다.

더 놀라운 것은 기존 사제중심의 기독교를 성도들의 공동체로 바꿔 놓은 점이다. 성도 모두가 스스로 자신의 제사장이 돼야 한다고 루터는 강조했다.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루터는 독일 귀족들에게 학교를 많이 세우라고 당부했다. 공부를 해서 성경을 읽고, 스스로 깨달아서, 누구의 도움이 아니라 오직 믿음(Sola Fide)으로 구원받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깨어 있는 성도들이 나타나며 교회뿐만 아니라 유럽은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게 됐다.

이렇게 Reformation은 종교개혁이라는 말로는 담기지 않는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507년 된 종교개혁을 맞이하는 우리는 정말 종교개혁가들이 목숨을 걸고 전하고자 했던 그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묻게 된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목회사회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