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짠 첫 여행에 자신감 뿜뿜… 통신비 아끼니 통장 두둑”

입력 2024-10-24 01:21
지난 6월 전남자립지원전담기관이 주최한 ‘통신비 아끼기 교육’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자립준비청년의 소액결제 내역 등 휴대전화 요금을 분석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도록 하는 강의가 진행됐다. 전남자립지원전담기관 제공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자립지원전담기관 종사자 200여명이 지난달 5일 경북 경주에 모였다. 아동권리보장원이 주최한 이날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은 지역 기관별로 운영하는 자립준비청년 대상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우수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나눴다.

자립을 앞둔 보호 종료 청년들은 계획적으로 돈을 쓰고, 혼자 병원에 가고, 혼자 살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종종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다. 시설에서 도움을 받던 때와는 다른 경험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런 청년들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도 다채로워졌다. 선배 자립준비청년이 멘토링을 해주거나 전문교육, 취업 연계 프로그램 등도 마련되고 있다. 하지만 추상적인 강의 위주의 프로그램이 적잖아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이날 우수사례 기관으로 선정된 전남자립지원전담기관은 문화·예술 체험을 위한 여행과 통신비 경제교육 등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삼성은 외부기관 협력 우수사례로 선정돼 자립통합지원사업인 ‘삼성 희망디딤돌’에 대한 사례 발표를 진행했다.

내 손으로 처음 짜본 여행

전남자립지원전담기관은 지난해 처음으로 ‘자립 여행’을 실시했다. 자립준비청년이 직접 여행 일정을 짜고 예산을 계획하면서 자기주도형 체험을 하도록 기획한 것이다. 연간 2회 프로그램 참여자를 모집해 지원한다.

여행 프로그램은 자립 지원과 큰 연관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기주도형 체험을 해본 경험이 비교적 적은 자립준비청년에게는 스스로 여행 계획을 짜고 무사히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양시연 전남자립지원전담기관 사회복지사는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해보는 체험 행사는 자립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며 “특히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자립준비청년과 전담기관 사이에 ‘라포’(상호 신뢰)가 형성돼 보호 종료 이후 자립 과정으로 연계가 이뤄지는 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말 위탁가정 보호가 종료돼 자립 3개월 차를 맞은 정모(25)씨는 지난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첫 여행을 다녀왔다. 평소 자립준비청년을 위해 학비나 주거 혜택 등을 제공하는 지원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여행을 간다는 내용이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자립 3개월 차인 정모씨가 지난 21일 서울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지난해 전남자립지원전담기관이 실시한 ‘자립 여행’에 참여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만난 정씨는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경제적 혜택과 달리 문화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취업을 위해 인턴을 하던 중이었는데 잠시 쉬어가는 느낌으로 ‘자립 여행’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해 10월 첫 여행지로 충남 예산을 정하고 일정을 세웠다. 윤봉길 의사 생가 등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촘촘하게 계획을 세우고, 교통편과 숙박비까지 고려해 예산을 짰다. 다른 목적지로 이동하는 시간 등도 고려해 계획을 세웠다. 정씨는 “내가 직접 계획해서 여행을 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며 “계획대로 짜놓은 여행 일정을 다 소화하겠다는 생각으로 굉장히 바쁘게 여행했던 기억이 난다”고 환하게 웃었다.

두 번째 여행은 지난 6월 정씨가 태어나고 자란 전남 지역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첫 여행과 달리 일정에 집중하기보다 지역의 자연환경 등을 둘러보는 방식을 택했다.

정씨는 “자립준비를 하다 보면 여유 있게 문화생활을 한다거나 스스로 쉬어가는 시간을 준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데 ‘나도 여행을 갈 수 있구나’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고, 시야가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한숨 쉬어가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과 생각도 깊게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여행을 계기로 국토 종주에 도전하고 언론사 취업 준비에도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통신비부터 차근차근 절약

자립준비청년들은 보호 종료 후 자립지원금을 손에 쥐게 되고, 사회생활을 통해 돈을 버는 경험을 처음 하게 된다. 처음 시작하는 소비·지출 관리 등 경제생활에서 적잖은 어려움을 겪는다. 가정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용돈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립준비청년들은 시설에서 일괄 관리하므로 경제관념이 생기기도 전에 큰 지출을 하는 경우가 많다. 휴대전화를 구매하고 사용하는 과정이 소비생활의 첫 시험대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전남자립지원전담기관은 ‘통신비 교육’을 마련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의 휴대전화 요금을 분석하고, 소액결제 내역 등을 확인해 불필요한 소비지출을 줄이도록 조언하는 방식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안모(23)씨는 스무 살이 되던 해 곧바로 비싼 휴대전화를 개통했다. 매달 소액결제로 쇼핑하는 데 15만원가량을 쓰기 시작했다. 인증번호만 누르면 손쉽게 결제가 이뤄지고, 당장 돈이 빠져나가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안씨는 통신비 절약 교육을 통해 우선 소액결제부터 끊기로 했다. 그는 “내가 가진 생활비 안에서만 소비하는 거로 바꿨더니 한 달에 15만원이 고스란히 예금으로 모였다”고 말했다.

양 사회복지사는 “자립준비청년이 처음 사회에 나오면 가장 많은 지출을 하는 분야가 통신비”라며 “고가의 휴대전화를 약정을 통해 무리하게 사거나 게임이나 쇼핑을 위해 소액결제를 하는 경우가 많아 부채가 생기기도 하는데, 용돈 관리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경제관념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