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기업이 이용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9.7% 오른다. 지난해 11월(4.6%) 이후 11개월 만의 인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24일부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의 전기요금을 1㎾h(킬로와트시)당 10.2%, 중소기업용 전기요금을 5.2% 인상한다고 어제 발표했다. 반면 가정에서 쓰는 주택용 및 일반용(음식점 등) 전기요금은 이번에도 동결했다. 1년반째다. 서민·자영업자들의 부담, 물가 안정을 고려하고 그나마 여력있는 기업들의 전기료를 올린 정부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도 한전의 고질적 적자 문제를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한데다 기업에게만 2년 연속 인상 부담을 지우는 게 합당한지 고민해봐야 한다.
한전은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 적자가 41조원이고, 부채 규모도 6월 현재 203조원에 달한다. 하루 이자만 120억원이 넘는데 일반기업이라면 당장 파산해도 할 말 없는 상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음에도 정부가 요금 인상을 미룬 채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전기를 팔면서 적자 구조가 고착됐다. 그 결과 주택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55%, 산업용은 66%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상대적으로 저항이 덜한 산업용만 건드리고 있는 중이다. 시장원칙에 어긋난 선택적 인상의 효과가 지속적일 순 없다.
해법은 명확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에너지값은 원가를 반영해서 상당한 수준으로 소비를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값이 외국에 비해 굉장히 싸서 소비가 많다는 것은 기후 변화 대응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까지 했다. 총리 말대로 기형적 에너지 요금체계를 더 이상 놔둘 수 없다. 원가에 맞춰 요금을 현실화하고 취약계층에겐 에너지 바우처 등 정부 재정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치 논리에 흔들리지 않을 독립적 위원회를 꾸려 가격을 결정하는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 서민을 위해 전기료를 동결한다 한들 한전 빚이 늘면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눈가리고 아웅 아닌가. 정공법을 주저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