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문재인 대통령 특사로 중국에 파견됐다. 그런데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날 때 시 주석은 탁자 상석에, 이 특사는 아래쪽의 탁자 측면에 앉았다. 마치 상하관계 같았다. 한국의 ‘사드’ 배치 때문에 하대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반면 시 주석은 그해 말 라오스 공산당 총서기가 보낸 특사나 2019년 4월 일본 총리 특사를 만날 땐 옆으로 나란히 앉거나 똑같이 탁자 맞은편에 앉아 예우했다.
2021년 4월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터키에서 무례한 대접을 받았다. 당시 샤를 미셸 EU정상회의 의장과 같이 갔는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남성인 미셸과는 옆으로 나란히 앉고, 여성인 폰데어라이엔은 멀찍이 떨어진 소파에 앉혔다. ‘소파 게이트’로 명명된 이 일로 에르도안은 여성을 차별하는 지도자로 낙인 찍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궁에서 2022년 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할 때 6m나 떨어진 탁자 맞은편에 상대를 앉혀 외교 결례라는 비판을 받았다. 러시아는 코로나19 방역 차원이라고 했지만 외신은 푸틴이 상대를 제압해 모욕감을 주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사흘 전 용산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회동한 뒤 나온 사진 때문에 여권이 발칵 뒤집혔다. 한 대표와 배석자를 탁자 맞은편에 나란히 앉힌 반면, 윤 대통령은 건너편의 두 사람 가운데쯤 앉아 탁자에 양손을 얹은 채 말하는 장면이다. 의전 홀대 논란이 외교 현장이 아닌 국내 정치, 그것도 여권 내에서 벌어진 건 이례적이다. 게다가 한 대표 측은 단순히 홀대라고 하기엔 마치 훈시하는 것처럼 너무 하대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굳이 이 사진을 언론에 공개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의전 문제라기보다는 애초부터 그런 모양새의 회동을 만들고 하필이면 그런 사진을 공개한 태도의 문제일 수 있다. 이 사진 한 장으로 국민들이 용산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많은 걸 알게 됐을 것 같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