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사회에서 예의 바르다고 여겨지는 행동’이라는 의미의 ‘매너’는 시대마다 다르게 불렸다. 고대 로마의 데코룸(decorum)에서 현대의 에티켓까지 다양한 단어와 함께 변천을 겪었다. 때로는 매너를 강조하면 ‘꼰대’라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만 저자는 “아직도 유효한 사회적 덕목”이라고 말한다.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매너는 법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매너는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끊임없이 우리를 야만으로 만들거나 세련되게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매너는 구시대 악습이라기보다는 마치 공기 같아서 그것이 부족해지기 전까지 굳이 말로 꺼낼 필요가 없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시대별 ‘예법서’를 통해 서양 매너의 역사를 고찰하고 있다. 서양사학자인 저자가 영국사를 전공한 탓에 서양, 특히 영국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저자는 역량 부족을 언급하며 겸손해했지만 “영국의 제국주의가 영국식 예의 규범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매너로 만들었다”면서 나름의 유용성을 강조했다. 영국식 매너가 범세계적 매너의 기준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매너가 남자를 만든다(Manners Maketh Man)’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영화 ‘킹스맨’에서 시작해 우리나라 광고에서도 자주 보였다. 실은 이 말의 기원은 영국이다. 14세기 영국 주교였던 위컴의 윌리엄이 사립학교 윈체스터 스쿨을 설립하고 학교의 모토로 정한 것이다.
서양 매너의 이론적 근거를 정립한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예절 바른 행위 자체를 좋은 것,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고 규정했다. 세 가지 원칙도 제시한다. 중용, 자제력과 함께 평등한 시민들 사이의 나타나는 우애, 동료애 등을 의미하는 ‘필리아’다. 저자는 “한때 매너가 전통적 귀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구분 짓기 위한 성격도 강했지만 그리스 시대의 매너는 단지 덕을 갖춘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표지였다”고 설명한다.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예절 바름, 매너라는 뜻의 데코룸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그에게 데코룸은 내적인 본성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내면과 외형이 일치하지 않는 허세나 무분별한 모방은 악덕이다. 예의 바른 행동이 높은 도덕성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전통은 꽤 오랜 기간 서양 매너의 기본 상식이었다.
엘리트 예법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이탈리아 귀족 가문 출신의 외교관 카스틸리오네가 16세기에 쓴 ‘궁정인’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군주의 처세를 다룬 것이라면 ‘궁정인’은 궁정 신하 처세서의 바이블로 불릴 정도로 궁정식 매너의 정수를 보여준다. 카스틸리오네는 ‘품격’을 강조하고 품격의 핵심으로 ‘스프레차투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다. 태연함, 자연스러움 등을 뜻하는 것으로 ‘기교를 기교로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진정한 기교’가 특징이다.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조바심에서 과도하게 꾸미는 ‘허례허식’과 대비하면 이해가 쉽다.
18세기 영국의 외교관으로 활약한 체스터필드 백작은 사랑하는 아들 필립에게 20여년간 인생의 조언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사후 출간된 ‘아들에게 주는 편지’에서 체스터필드가 가장 신경 쓴 것은 매너 교육이었다. 주로 프랑스 예법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위”라고 말한다. 품위는 매너, 데코룸 등과 동의어다. 그는 “품위는 첫눈에 사람을 사로잡는 힘을 갖고 있다”면서 “발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재능과 달리 보자마자 위력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좋은 매너는 최고의 사람들에게 귀염받도록 만들어 준다”면서 칭찬과 아부에 관한 실용적인 조언을 소개한다. 그가 생각하는 아부의 핵심은 “아부가 특별한 재주처럼 보여서도 안 되고, 미리 계획한 것처럼 보여서도 안 되며,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18세기 영국은 경제적 성장과 함께 점차 프랑스의 영향에서 벗어나 ‘영국식 매너’가 자리를 잡아간다. 예의, 세련됨, 교양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폴라이트니스(politeness)’로 불렸다. 폴라이트니스의 핵심 가치는 자유, 소탈한 자연스러움, 편안함 등이었다. ‘젠틀맨’으로 불리는 영국 신사를 떠올리면 된다. 어디까지나 상류층의 매너였다. 18세기 말부터는 산업화 이후 신흥 부자들의 성장과 함께 반동 현상이 나타난다. 런던의 상류층 엘리트들은 신흥부자들이 침범할 수 없는 배타적인 공간인 회원제 클럽을 만들었다. 이곳에 가입하기 위해 엄격한 규칙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것이 에티켓이다. 에티켓은 ‘붙이다’는 뜻의 옛 프랑스어에서 나온 말로 성이나 궁전의 문에 붙어 있던 규칙을 의미한다. 저자는 “매너가 스타일과 도덕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행동을 포괄하는 데 반해 에티켓에서는 도덕이라는 요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에티켓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다 계급이 아닌 개인 중심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새로운 교통수단 이용 시 필요한 에티켓부터 직장 여성들을 위한 에티켓, 성인과 청소년을 위한 ‘섹스 에티켓’도 생산된다. 이 시기의 특징은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적이고 세심한 매너”다. 역사적으로 매너는 유행도 있고 변화도 겪는다. 그래도 어느 시대나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좋은 매너’가 있다. 저자는 “좋은 매너는 더 나은 관계를 만들고, 더 좋은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평화로움을 창조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 세·줄·평★ ★ ★
·품격과 교양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도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옛 사례도 풍부하다
·동양 매너의 역사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품격과 교양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도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옛 사례도 풍부하다
·동양 매너의 역사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맹경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