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에 대처할 계획이나 수단을 대책이라고 한다. 현안에 대한 임금의 질문을 책문(策問), 신하의 답을 대책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과거 시험에도 사용됐다. 급제자의 등수를 가리는 마지막 시험인 문과 전시(殿試) 문제를 임금이 직접 출제해서다. 전시 책문은 주로 현안을 설명하고 해결방법을 묻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생각을 정책 대안으로 참고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세종은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가, 중종은 술의 폐해를 논하라, 명종은 나라를 망치지 않으려면 왕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을 책문했다.
응시자들은 경서의 문구와 사례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정치철학과 해결방안을 논리적으로 서술해 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답안지 길이는 평균 10m에 달했다고 한다. 관직의 종류와 품계를 결정받기 때문에 아첨 대책을 쓰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책에 반드시 쓰는 상투적 문구대로 ‘죽기를 각오하고’ 답안을 작성해 왕이나 조정 대신의 심기를 거스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는 광해군 때 임숙영(1576~1623)의 대책이다.
광해군 3년(1611년) 치러진 별시 책문은 “부족한 자질로 외람되게 왕통을 이었으나 지혜와 현명함이 부족하다. 당장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시급한 것은 인재를 구해야 하는데 선비들의 의견이 서로 다르다. 폐단을 없애고 쇠잔한 백성을 소생시키려면 공물을 쌀로 바꿔야 하는데 다른 의견도 있다. 경계를 바르게 해야 하는데 남양(경기도 화성)의 간척지는 실제와 다르다. 호적을 정리하려고 한다. 이 네 가지에 대한 답을 달라”였다.
임숙영의 대책은 직언이었다. 네 가지 질문에 각각 답을 한 후 중요한 게 따로 있다며 궁중법도 정립, 언로 확대, 공평하고 바른 도리 실행, 부지런한 정사 실천 등을 주장했다. “사대부들은 4개의 붕당으로 갈라져 서로 배척한다. 나라의 우환과 조정의 큰 병폐를 문제로 내지 않고 어찌 자질구레한 일에만 매달리는가. 출제 의도를 모르겠다. 너무 사사로이 정치하고 있다. 전하의 나라는 지금 위태롭다. 궁첩이 정사에 간여하는 것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때문이다. 인사 청탁에 따른 분에 넘치는 승진을 막고 직무 태만을 바로잡아라. 왕비나 후궁이 권력 탐하는 것을 막아라. 충언에 벌을 주면 누가 의견을 말하나. 임금의 잘못을 말하는 사람에게 절하고 고마워해라. 불공정이 아예 관습이 됐다. 한 가지 일이라도 공정하게 하라. 외척의 정치 간여와 궁첩의 인사 간여를 막아라. 임금이 하루라도 자기 역할을 생각하지 않으면 덕을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망한다. 이 글로 허물을 재촉하고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더는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겠다. 임금의 실수가 국가의 병이다. 전하 자신을 닦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자만심을 버려라.”
광해군은 “임금을 능멸했다”며 화를 내고 임숙영을 급제자 명단에서 삭제하라 명한다. 이 일이 알려지자 영의정 이덕형과 좌의정 이항복 등 많은 관리와 재야 선비들이 낙방은 잘못이라며 4개월 동안 ‘항의’했다. 광해군은 결국 명을 거뒀다. 이른바 삭과파동이다. 광해군은 임숙영의 대책을 대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임 중 편파적 인사와 숙청을 강행했다. 궁궐 공사에 집착해 백성을 수탈했고, 매관매직도 했다. 점성술에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가졌다. 결국 새어머니 인목대비 폐위, 명과 후금 사이에서의 외교 방식 등을 놓고 지지세력이던 ‘대북파’와 갈등을 겪으면서 반정(反正)으로 쫓겨났다.
역사는 살아 있는 과거라는 말이 있다.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로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아전인수식 해석은 금물이다. 개인, 단체, 회사, 국가 모두에 해당한다.jwjeon@kmib.co.kr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