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장수(長水)는 산고수장(山高水長)이라는 말에서 지명을 얻었다는 설이 있을 만큼 높고 수려한 산세와 굽이굽이 휘도는 물길이 길게 이어져 있는 고장이다. 군 지명을 비롯해 6개 읍면 가운데 5곳의 지명에 물을 의미하는 수(水)·계(溪)·천(川)이 들어간다. 금강의 발원지인 뜬봉샘이 있고,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시작된 물이 금강, 섬진강, 영산강 등 3대강으로 흐르는 시원(始原)이 이뤄지니 ‘긴물’(長水)임에 틀림없다.
장수는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힌다. 그 가운데 장수 장안산(長安山·해발 1237m)이 있다. 장수, 장계, 천천, 계남, 번암 등 5개 읍면을 경계로 두고 있다. 숲의 경관이 수려해 군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여름에는 계곡 피서, 가을에는 억새와 단풍으로 유명하다.
장안산 들머리는 무룡고개다. 무룡고개는 백두대간에서 갈린 금남호남정맥이 영취산을 벗어나면서 제일 먼저 숨을 고르는 고개다. ‘용이 춤을 춘다’는 의미인데, 이 고개에서 장안산으로 향하는 산줄기의 기세가 용이 하늘로 춤추며 올라가는 형상이라고 한다. 무령고개로도 불린다. 조선시대 남원 출신의 관리인 무령군 유자광의 호인 무령(武靈·전남 영광의 옛 지명)을 뜻한다.
장안산은 전형적인 육산이어서 산행하기 크게 어렵지 않다. 더구나 무룡고개는 해발 900m여서 정상까지 고도 300여m만 올라가면 된다. 잘 정비된 등산로에 야자 매트가 깔려 있어서 초입부터 정상까지 ‘내내(長) 편안(安)’한 산이다.
장안산의 명물은 산등에서 동쪽 능선으로 펼쳐진 광활한 억새밭이다. 들머리에서 30~40분쯤 오르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하얀 물결을 이루는 억새밭이 펼쳐진다. 흐드러지게 핀 억새가 가을바람에 몸을 맡기고 맘껏 춤춘다.
바로 옆에 첫 번째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약 1㎞를 더 가면 계단 옆 가파른 경사면에 다시 억새밭이 조성돼 있다. 이곳부터 정상은 약 300m 거리다. 정상에는 ‘장안산’ 표석과 헬기 이착륙장이 자리잡고 있다. 우측 아래 월경산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너머로 운무가 춤을 춘다. 운무 너머 좌로 산청의 웅석봉, 우로 지리산 마루금이 손짓한다.
장안산 서쪽 능선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무드리계곡에 지실가지마을이 있다. 오지인 장수에서도 진짜 오지 마을이다. 워낙 땅이 비옥해서 어떤 것을 심어도 열매가 잘 열린다고 해 ‘튼튼한 열매가 열린다’는 뜻으로 지실가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덕산제 연주마을에서 출발해 계남면 지소골 원장안마을까지 이어지는 8㎞의 ‘장안산 마실길’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특이하게 생긴 참나무 한 그루가 특이하다. 완전히 원형으로 꺾여서 돌아간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마을 입구에 장안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처음 숨고르기를 하는 저수지 덕산제가 있다. 용림제로도 불린다. 덕산제 아래 풍치절경의 골짜기가 덕산계곡의 시작이다. 아래쪽으로 방화동 생태길이 이어진다. 물소리 청량한 계곡 따라 기암괴석과 용소(龍沼),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상류 장안산 군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내려가면 데크 길 초입에서 ‘윗용소’를 만난다. 소(沼) 바로 위 너른 바위에는 신선이 와서 놀았는지 바둑판이 새겨져 있다.
‘아랫용소’는 데크 길이 끝나기 직전에 있다. 웅장한 바위 가운데로 물줄기가 장쾌하게 쏟아진다. 짙은 물빛이 용소의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용소에 흥미로운 전설이 얽혀 있다. 윗용소에는 아빠 용이, 아랫용소에는 엄마와 아들 용이 살았다. 아빠 용은 승천했지만 용 모자(母子)는 사람들이 아랫용소 암벽에 글자를 새기려고 나무를 베 소를 메우는 바람에 하늘로 오르지 못했다. 아랫용소는 아들 용이 승천하려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깊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랫용소 암벽에는 군데군데 한자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아래로 이어진 길도 편안하다. 징검다리도 건너고 계곡 양쪽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방화폭포는 높이 110m에서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낸다. 덕산제의 물을 끌어다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가동하는 인공폭포다.
방화동이 속한 번암면 동화댐 아래에는 ‘장수물빛공원’이 조성돼 있다. 상징분수, 터널분수, 물소리원, 조각분수, 바닥분수, 워터윌, 물꽃정원, 옹달분수 등 각종 생태적 친수공간이 배치돼 있다.
인근 ‘죽림마을’에 전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재영 가옥이 자리한다. 안채, 사랑채, 곳간채, 솟을대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여행메모
무룡고개→정상 3.2㎞에 2시간 소요
장안산 마실길·방화동 생태길 ‘호젓’
무룡고개→정상 3.2㎞에 2시간 소요
장안산 마실길·방화동 생태길 ‘호젓’
무룡고개에는 화장실을 갖춘 무료주차장이 크게 마련돼 있다. 하지만 억새 시즌 주말에는 일찍 가득 찬다. 무룡고개에서 정상까지는 편도 3.2㎞로 왕복 3~4시간가량 걸린다. 억새 풍경이 좋은 곳은 첫 번째 전망대 주변이다.
장안산 마실길은 약 8㎞인데 2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덕산제 인근 연주마을에서 시작해 원장안 마을에서 끝나는 것이 편리하고 힘이 덜 든다. 휴대전화가 되지 않는 곳도 있다. 간혹 곰이나 멧돼지 등이 출현하기도 하는 만큼 혼자 걷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방화동 생태길은 전체 5.4㎞다. 거리는 제법 되지만 경사가 거의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왕복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다. 장안산 군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출발하면 계속 내리막이어서 걷기가 편하다.
장수=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