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폐배터리에서 핵심 희소 원료 확보”

입력 2024-10-23 02:13

21일(현지시간)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쿠펜하임. 6800㎡ 대형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벽과 천장을 따라 파이프가 복잡하게 얽힌 공간이 펼쳐진다. 색색의 조명을 받고 있는 대형 원통 탱크에는 황산니켈, 황산리튬, 황산코발트, 황산망간 등의 원소기호가 적혀 있었다.

폐배터리 모듈을 분쇄해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이차전지의 원료로 다시 만드는 공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운영하는 ‘배터리 재활용 공장’은 이 같은 광경을 펼쳐내며 가동을 시작했다.

폐배터리의 원료를 추출해내는 재활용 공장을 세운 것은 글로벌 완성차 기업 가운데 벤츠가 처음이다. 쿠펜하임의 벤츠 재활용 공장에서는 연간 2500t의 폐배터리 처리 용량을 갖췄다. 100개의 원형 탱크에서 5만개 이상의 배터리 모듈을 생산할 수 있는 원료를 추출해 낼 수 있다. 플라스틱, 알루미늄, 구리, 철 등 무거운 금속도 분류돼 재활용에 쓰인다.

폐배터리 모듈을 분쇄하기 시작해 물리적·화학적 공정을 거쳐 99.9%의 순도 높은 희소 금속을 뽑아내기까지 4일이 걸린다. 재활용률은 96% 이상이다. 이렇게 추출된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은 새로운 배터리 생산에 바로 투입될 수 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니켈·코발트 회수율 95% 이상, 리튬 회수율 80~85% 이상이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으로 본다. 벤츠는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통해 생산비용 절감과 탄소중립 실현에 따른 지속가능성이 담보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벤츠는 왜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뛰어들었을까. 전동화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면서 배터리 시장은 생산부터 재활용까지 밸류체인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해 핵심 희소 원료를 확보하는 것은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셈이다. 연구·개발(R&D)을 통해 배터리셀 개발 역량을 갖추고 있는 벤츠가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촘촘하게 배터리 내재화를 다져 나가려는 것으로도 분석된다. 올라 칼레니우스 벤츠 최고경영자(CEO)는 “배터리 재활용 공장은 원자재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재 위험에도 대처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공장 소개를 맡은 마누엘 미헬 배터리 재활용 총괄은 “배터리 재활용 첫 과정에서 ‘완전히 방전됐는지’를 먼저 확인한다”며 “액체 냉각으로 열을 식히며 화재나 폭발 등을 방지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벤츠는 시의적절한 대처를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정교함을 높이는 작업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쿠펜하임=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