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형제’로 불렸던 수도사 니콜라 에르망(1611~1691)은 “건강한 영성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시선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와 가정, 사회 등에서 신앙의 의미를 찾는 묵상이 종교개혁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일상 속 신앙 공동체 안에서 깊은 묵상을 하는 이들의 소박한 영성의 삶을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바람 한 점 없던 지난 7일 강원도 양양 죽도해수욕장 앞바다는 그렇다할 파도 없이 잔잔했다. 여름에는 서퍼들로 북적였던 바다엔 몇몇 서퍼만 떠 있었다.
“오늘 파도는 잔잔했어요. 서핑 하기엔 무용한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하나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생긴 것 같아요.”
해변 앞 ‘타일러 서프’에 모인 15명의 기독청년이 이날 오전 서핑의 신앙적 감상을 나누고 있었다. 기독문화 모임 ‘샬로믹데이클럽’이 마련한 ‘서핑 묵상’은 서핑에 몰입해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신앙적 의미를 찾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렉시오 디비나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걸 의미하는데 이들은 여기에 서핑을 더했다.
샬로믹데이클럽 대표 김지환(37) 전도사는 “코로나19 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시도가 생겨났는데 바로 서핑 묵상이었다”며 “영성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시선을 갖는 것이라는 로렌스 형제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낯선 묵상법이지만 크리스천 청년들은 파도를 탄 뒤 해변으로 돌아와 쉬면서 하나님과 조용히 대화하는 묵상의 시간을 가진다.
일곱 번째 서핑 묵상에 참여했다는 신명(30)씨는 “파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마치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 주시는 기회와 닮았다”며 “서핑보드가 파도와 만나야 서핑을 할 수 있듯 인생의 파도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은 신앙 공동체를 지향하는 서핑 묵상이 왜 이제야 주목받게 된 걸까.
샬로믹데이클럽은 지난해 9월부터 정식 프로그램인 ‘서비스 서프’(파도타기 예배)를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에 ‘크리스천 서퍼스 코리아’도 출범했다.
이 같은 묵상법은 전통 교회에 익숙하던 청년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김한나(33)씨는 “기도가 필요할 때는 혼자 골방에서 금식 기도를 했었다”며 “파도를 타면서 묵상하고 동료들과 예배 드리면서 이 넓은 바다가 하나님 창조 세계 안에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돼 하나님의 품 안에서 자유를 경험했다”고 했다.
양양=글·사진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