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 요구로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윤석열 대통령과의 21일 회동에서 김건희 여사 관련 ‘3대 요구’ 성과를 얻지 못했다. 여권에서는 그간 회동을 두고 벌어진 ‘독대 요청 논란’과 김 여사 문제를 둘러싼 양측 대립 상황에서 예견된 결과라는 반응을 내놨다. 야당이 김 여사를 겨냥한 특검법을 재발의하며 11월 총공세를 예고한 상황에서 당정 균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측은 이날 회동 결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불화를 드러냈다. 당 일각에선 면담 내용을 한 대표가 직접 설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헤어진 뒤 국회로 돌아오지 않았다. 박정하 당대표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한 대표가 전한 요구 사항만 설명했고, 윤 대통령 수용 여부나 반응에 대해 “용산에 물어보라”며 함구했다. 대통령실은 아예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친한(친한동훈)계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한 대표는 할 얘기를 다 했지만, 대통령 측에서 반응이 없었다. 이럴 거라면 도대체 왜 보자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한 대표가 직접 브리핑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의 표시”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는 예견된 결과라는 평가가 많았다. 한 대표 측과 대통령실은 지난달 21일 ‘독대 요청’ 사실이 언론을 통해 먼저 알려지면서 회동 형식과 시점 등을 둘러싸고 기싸움을 벌였다. 한 대표가 최근 김 여사의 공개활동 중단, 대통령실 인적 쇄신, 김 여사 관련 의혹 규명 협조 등 대통령실이 민감해하는 요구를 공개 촉구한 것에 대한 친윤(친윤석열)계의 비판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이미 ‘빈손 회동’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다들 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대표가 이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차 회동 요구에 화답한 것도 대통령실을 불편하게 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앞서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대표를 향해 “면담 잘하시고, 기회가 되면 야당 대표와도 한번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 대표는 박정하 대표 비서실장 명의 공지를 통해 “구체적 일정은 추후 논의할 예정이지만, 민생정치를 위해 회담에 흔쾌히 응하겠다”고 화답했다.
한 친윤계 인사는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 여사에 대한 동행명령장까지 발부된 터에 한 대표가 이 대표와 다시 회동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며 “대통령실에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니겠냐”고 말했다.
예견된 빈손 회동은 위태로운 당정 관계를 더욱 벼랑으로 몰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당분간 당정 간 원활한 소통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권 투톱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야권의 김 여사 특검법 방어를 위한 단일대오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4일 김 여사 특검법 재표결에서 이미 최소 4표의 이탈표가 발생했다. 한 지도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특검법 방어를 고려하면 대통령실이 마냥 버티기로 일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친윤계 한 의원은 “대통령도 닥친 현안들을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임기가 많이 남았고,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카드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종선 구자창 이강민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