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엘세바를 떠나기 전날 밤
밤새 몸 뒤척이며 드리는 탄식의 기도에
사막의 별도 눈을 뜨지 못하고
모래바람도 길을 떠나지 않았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산까지 가는 사흘 거리
모래알보다 더 많은 말들이 맴돌았으나
제단에 드릴 숫양 한 마리 없이
거친 숨결로 나누던 침묵의 대화
마침내 이삭이 줄에 묶여 제물로 드려질 때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들었을
번제의 칼날
그 순간
하늘의 별들보다 더 많은 자손과
땅의 모래알보다 더 많은
영혼의 후손들이 보였을까
부정(父情)을 넘어
믿음의 길을 떠난 아브라함
순종의 제물이 된 이삭
죽음의 산을 넘어 펼쳐진
그 푸른 은하의 세계.
시인(새에덴교회)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 에서와 야곱의 아버지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그 적자 아들을 망설이지 않고 제물로 바치려 한 이야기를 두고 믿음의(히 11:17), 그리고 순종의(약 2:21) 표본으로 삼았다. 시인은 아브라함의 탄식과 이삭의 번민을 모두 체감한다. 이들 부자는 사태의 문맥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자아를 통제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다. 하나님은 시험만 하고 이삭을 살렸다. 시인은 이삭의 입을 통하여 그가 줄에 묶여 제물로 드려질 때 '하늘의 별들보다 더 많은 자손'을 보았다는 수사(修辭)를 형성한다. 성경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기록된 것은, 이들 각자와 일대일로 대응하는 하나님이란 의미다. 시인은 이 의미를 넘어 하나님이 이들과 맺은 약속 및 계획이 한결같이 그 후손들을 위한 축복이었다고 인식했다. - 해설 : 김종회 교수 (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