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선 임박 美 ·고전하는 러시아 틈새 전황 급변 전 ‘청구서 금액’ 높이기 목적

입력 2024-10-22 00:27
지난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고 공개한 영상. 우크라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 X캡처

북한의 대규모 러시아 파병 결정은 미국 대선과 급박한 우크라이나 전황 등을 동시에 노린 복합 포석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를 압박할 수단으로 북·러 군사 밀착이라는 지정학적 긴장 고조를 선택했고, 전황이 급변하기 전 서둘러 군대를 보내 대(對)러시아 ‘청구금액’을 높이려는 목적이 담겼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파병 결정 시점이 임박한 미 대선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2개의 전쟁(우크라이나·이스라엘)을 동시 대처하는 과정에서 수세에 몰린 바이든 행정부에 ‘확전’이라는 더 큰 악재를 던져 미 대선 과정에서 존재감을 키우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재선 시 즉시 종전’을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원을 염두에 둔 조치로도 풀이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21일 “트럼프가 당선되면 어떤 식으로든 전쟁을 끝내기 위해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며 “불확실성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북한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서둘러 움직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장기간 전쟁으로 군 병력 부족과 사기 저하에 시달리는 러시아 내부 상황도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가장 곤란한 시기에 파병이란 적극적 도움의 손을 내밀어 대러 청구액을 높일 강력한 명분을 쌓으려 했다는 의미다. 이관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은 “우리가 월남전 파병 이후 큰 경제적 이익을 얻었듯 북한도 군사 지원 이후 유사한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러시아는 돈이 많고 병력은 없는데, 북한은 돈이 없고 병력은 있어 이해관계가 맞는다”며 “러시아가 북한 병사 1인당 꽤 많은 월급을 주기로 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파병을 통해 러시아가 꺼려온 첨단무기 제조 기술력 제공을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고 진단했다. 현 위원은 “북한이 1만명 넘는 병력을 보냈으니 러시아로서도 여러 첨단 군사기술을 넘겨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며 “북한은 트럼프가 집권할 가능성도 상정하고 있는데, 이때 (미국에) 위협이 되려면 러시아로부터 군사기술을 빨리 넘겨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 등 첨단 군사기술을 보유하게 된다면 추후 북·미 협상장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얘기다. 오 위원도 “대규모 파병의 반대급부로 북한이 얻을 가장 큰 실익은 군사기술”이라고 말했다. 오 위원은 다만 “트럼프 행정부든, 해리스 행정부든 북한의 파병을 절대 용인하진 않을 것”이라며 실익을 얻긴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의 대규모 파병은 ICBM 발사나 핵실험을 통해 미국을 겨눴던 기본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도발 전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박 교수는 “한국을 고리로 미국 등 국제사회와 소통하려 했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전면에 등장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박민지 이택현 박준상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