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어제 대통령실에서 80분간 만나 김건희 여사 논란을 비롯한 정국 현안을 논의했다. 회동은 한 대표가 독대를 요청한 지 한 달 만에야 이뤄졌다. 또 독대가 아닌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배석한 3자 차담 형식 만남이었다. 회동 날짜와 형식을 둘러싼 신경전에서 예견할 수 있었듯 결국 현안과 관련해 속 시원한 해법이 없었던 ‘빈손’ 회동에 그쳤다. 회동 결과에 실망한 국민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회동에서 한 대표는 최대 현안인 김 여사 논란과 관련해 3가지 요구 사항을 윤 대통령에게 제기하며 과감한 변화와 쇄신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내 김 여사 라인 배제, 대외 활동 중단, 김 여사 의혹 규명을 위한 관련 절차 협조가 그 3가지다. 한 대표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감시하기 위해 공석인 대통령실 특별감찰관도 빨리 임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한 대표 요구에 이렇다 할 해법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회동 뒤 대통령실이나 한 대표 측에서 윤 대통령 반응에 대해 구체적 설명이 없는 것으로 봐선 오히려 심각한 이견을 드러냈을 개연성이 높다. 여권 수뇌부가 모처럼 마련된 회동에서 제일 중요한 현안에 아무런 해법을 도출하지 못한 건 정치력 부재라고 밖에 달리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 여사 문제는 여당뿐 아니라 국민들의 불만도 점점 커지고 있어 그냥 덮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조속히 내놓지 않을 경우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한 대표는 회동에서 의정(醫政) 갈등을 풀기 위해 ‘여야의정 협의체’를 출범할 필요성도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또 고물가·고금리 등 어려운 민생 대책과 정부의 개혁 과제 및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의료나 민생, 외교안보는 국민들 삶이나 국가 미래에 직결된 사안인 만큼 김 여사 논란과 별개로 대통령실과 여당이 계속 머리를 맞대 의미 있는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이번 회동을 계기로 자칫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더욱 멀어져선 안 된다. 한번의 만남으로 모든 문제를 다 풀긴 어려웠을 것이기에 앞으로 더 자주 만나고 소통해 간극을 좁혀나가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호흡을 잘 맞춰야 국정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고 그게 국민들 삶에도 도움이 된다. 그렇지 않고 ‘윤·한 갈등’이 더 첨예해진다면 여권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