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청약통장 개설은 직장에 갓 들어온 후배에게 선배들이 금과옥조처럼 가르쳐 주던 재테크 1순위 비법이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로 여겨졌던 시기도 있었다. 그랬던 청약통장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2022년 6월 2859만9279명을 정점으로 가입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말 가입자 수는 2679만4240명으로 전달보다 3만8793명 감소했다. 2022년 6월보다는 180만명 이상 줄었다. 청약통장은 공공·민영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가입한다. 과거엔 청약저축, 청약부금, 청약예금의 3가지였다. 지금은 3가지를 통합한 청약종합저축과 만 19~34세가 가입할 수 있는 청년우대형 청약종합저축이 있다.
해지자가 더 많다는 것은 ‘내 집 마련 통로 1순위’라는 기능이 퇴색하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 등 수도권 주요 지역에선 청약통장을 오래 보유하고 있어도 당첨권에 들기 어려워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 18일 당첨자를 발표한 대치에델루이의 최고 당첨가점은 84점 만점이었다. 7인 이상 가구가 15년 이상 무주택으로 버텨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최근 청약을 진행했던 청담르엘도 모든 주택형에서 최소 당첨가점이 74점이었다. 5인 가구가 15년 이상 무주택을 유지해야 나올 수 있는 점수다. 자녀를 셋 이상 낳지 않으면 15년 이상 무주택으로 버텨 최고 점수를 받아도 주요 지역 아파트 당첨이 어려운 셈이다. 반면 지방에선 통장이 없어도 어렵지 않게 분양받을 수 있다. 전국 어디에서도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이런 구조가 유지된다면 가입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장기 가입자 중 상당수가 청약 당첨을 노리는 게 아니라 굳이 해지할 이유가 없어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미래를 어둡게 한다. 가입 당시의 비과세·소득공제 혜택을 떠올리며 ‘다른 통장보단 낫겠지’라고 생각했던 가입자들이 더 좋은 상품을 확인하거나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해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청약통장의 화양연화가 다시 올 수 있을까.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 듯하다.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