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어느 장단에도 춤 못 추는 한국 증시

입력 2024-10-22 00:32

미국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강한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부진했던 중국 증시마저 강력한 부양정책에 힘입어 강한 반등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지난 18일 종가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연초 대비 -2.3%, -13.1%로 전 세계 증시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기록 중이다. 글로벌 증시에서 한국 소외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정부가 강력히 추진한 한국 증시의 밸류업 정책이 무색해지는 모양새다.

한국 증시의 소외 현상에는 금융투자소득세 논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만 또 다른 원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인공지능(AI) 사이클 수혜 차이 혹은 한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다. 글로벌 AI 사이클이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우려했던 승자 독식 현상이 현실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삼성전자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상징하는 현상이 미국 엔비디아,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와 삼성전자 간 시가총액 격차 확대다. 엔비디아와 삼성전자 간 시가총액 격차를 차치하더라도 올 2월 중순을 기점으로 한국 전체 시가총액을 넘어선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지난 18일 종가 기준 한국 전체 시가총액의 1.9배에 달하는 등 격차가 급격히 확대됐다. AI 사이클을 상징하는 엔비디아의 비약적 성장 속에 삼성전자를 위시한 한국 경제가 얼마나 소외됐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삼성전자와 경쟁 관계였던 TSMC 간 시가총액 격차는 이미 ‘넘사벽’이 됐다. 올해 초 TSMC의 시가총액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1.38배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3.4배로 격차가 2배 이상으로 확대됐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AI 산업 내 주요 기업 간 명암이 뚜렷해진 것이다. 일부 기업만으로 형성되고 있는 AI 생태계 진입 여부가 기업은 물론 국가별 증시 흐름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두 번째는 부양정책 차이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물가 안정을 기반으로 공격적인 금리 인하에 이미 나섰고 연내 두 차례 금리 인하를 통해 총 100bp 내외의 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통화완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AI 사이클을 중심으로 한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기반한 산업정책 강화를 통해 강력한 투자 사이클을 유도하고 있다. 중국 역시 강력한 유동성 정책을 추진 중이며 인민은행이 증권, 펀드, 보험에 보유 주식을 담보로 국채 등 고유동성 자산으로 빌려주는 제도, 즉 사실상의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또한 중국 인민은행은 연내 지준율 및 각종 정책 금리의 추가 인하를 밝히는 등 공격적인 유동성 정책 행보에 나서고 있다. 재정 부양정책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규모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상당한 규모의 재정 부양정책을 실시할 움직임이다. 통화 및 재정정책이 모두 강력한 부양기조로 전환된 것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10월 기준금리 인하를 끝으로 올해 금리 인하 사이클이 종료될 전망이고 경기부양과 관련된 재정정책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한·미·중 3국의 뚜렷한 정책기조 차이가 증시의 차별화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한국 증시 소외현상을 촉발하고 있는 요인들이 조기에 해소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 있다. 증시는 각국의 경제를 대변하는 거울이다. 증시 부진 혹은 국내 증시 소외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2010년대 중반 사례에서 국내 경제의 저성장 리스크를 높일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광범위하고 공격적인 경기 부양책과 신산업 관련 정책 추진을 통해 국내 증시도 글로벌 장단에 맞춰 함께 춤을 춰야 할 것이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