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옆 굴뚝 없는 발전소… 3만세대·제2테크노밸리 난방 책임

입력 2024-10-22 04:01
경기 성남시의 판교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차량들은 오른편으로 ‘한국지역난방공사’라는 문구가 적힌 시설을 마주하게 된다. 1만1600평의 면적에 수십 미터 높이의 건물 서너 동이 들어선 이곳은 요란한 소음도, 짙은 매연도 새어 나오지 않아 얼핏 봐서는 평범한 업무 단지처럼 느껴진다. 약 300m 떨어진 인근의 주거 단지와 같은 시야에 담더라도 별다른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한국지역난방공사 판교지사 내부 통합운영센터 화면에 전국 사업소의 열·전력 생산 현황이 표시돼 있다. 판교=이의재 기자

하지만 해당 시설이 실제로 인근 주민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지난 15일 찾은 한국지역난방공사(이하 한난) 판교지사는 동·서판교, 고등지구에 거주하는 3만2647세대와 제2테크노밸리 업무 지역의 난방을 책임지는 열병합발전소다. 핵심 설비인 열병합발전설비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원료로 시간당 172G㎈(기가칼로리)의 열과 146MW(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한다. 가스 터빈과 스팀 터빈을 순차적으로 돌려 전기를 만들고, 이 과정에서 나오는 600℃ 안팎의 열을 알뜰하게 모아 난방에 활용하는 구조다. 65℃ 안팎의 지역난방수는 판교지사의 열교환기를 거치면서 120℃의 열을 품고 도심으로 흘러간다.

판교지사 내부에서 열공급 시설을 가동하는 모습. 한국지역난방공사 제공

판교지사의 최대 난방 역량은 시간당 347.4G㎈에 이른다. 필요 시 일종의 ‘예비 전력’인 첨두부하보일러를 가동해 시간당 171G㎈의 열을 추가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지훈 판교지사 운영부장은 “열병합발전설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난방 수요가 기본 설비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때 (첨두부하보일러를) 가동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남는 열을 임시 저장해 두는 시설도 있다. 높이 35m, 직경 27m의 원통형 구조인 축열조는 생산한 열을 66~98℃의 온수 형태로 보관한다. 열을 적게 쓰는 시간대에 잠시 저장했다가 부하가 늘어나는 저녁 시간대에 공급량을 쉽게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63.8㎞ 길이의 수송관 2개를 통해 다른 사업소로 남는 열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15일 찾은 경기 성남시 한국지역난방공사 판교지사 내부의 축열조 설비. 판교지사는 직경 27m, 높이 35m의 원통형 구조 안에 66~98℃의 온수를 임시로 저장하고 있다. 이의재 기자

이처럼 대규모 발전 시설을 주거지역 인근에서 운영하고 있음에도 여타 시설처럼 지역 주민들로부터 혐오의 시선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판교지사의 특징이다. 굴뚝처럼 눈에 띄는 시설을 전부 실내로 집어넣으면서 미관상으로 거부감을 줄인 데다가, 실질적인 환경 개선 노력을 통해 인근 환경에 미치는 영향 자체를 최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열병합발전소는 가동 과정에서 질소산화물(NOx)을 비롯한 미세먼지 촉발 물질을 배출한다. 판교지사의 연도별 동절기(12월~익년 3월) 배출량을 보면 2018년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60.31t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후 5년간 판교지사는 촉매 교체와 저감 설비(탈질 설비) 개선, 덕트 버너 교체 등을 통해 배출량을 대폭 저감했다. 지난해 판교지사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2018년의 3분의 2에도 미치지 않는 39.59t까지 줄었다. 지난 9월에는 이를 바탕으로 한강유역환경청에서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자발적 협약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판교지사 관계자는 “평시 배출량도 환경 기준치를 한참 밑돌지만,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을 때는 암모니아수 주입량을 평시(시간당 12㎏)의 곱절로 늘려 미세먼지 저감에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난방은 각 가정에 보일러를 설치해 난방과 온수를 공급하는 개별난방과 대치되는 집단에너지사업의 대표적인 공급 형태다. 국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커지고 있다. 2022년 기준 한난은 파주·화성·판교 등 수도권 13개 지역과 세종·광주 등 지방 6개 지역에 열병합발전소를 구축하고 있다. 2020년 전국 168만 가구였던 한난의 지역난방 공급 세대 규모는 2년 뒤인 2022년 180만 가구까지 증가했다.

친환경적인 면모를 유지하면서도 난방 과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지역난방의 강점이다. 우선 지역난방은 열병합발전소에서 대규모로 생산한 난방과 온수를 인접 지역에 공급하는 구조를 지녔다. 대량 생산, 대량 공급이 기본 원칙인 만큼 자연스럽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전·난방 과정의 부산물을 알뜰하게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한난은 열병합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모아 전력거래소에 공급한다. 연간 전력 판매량도 2020년 1079만2000MW에서 2022년 1279만1000MW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소각장 등에서 버려지는 ‘폐열’을 의미 있게 재활용하기도 한다. 판교지사는 인근 성남시 소각장에서 쓰레기를 태울 때 발생하는 폐열을 저렴하게 구매해 시간당 4.4G㎈의 열을 획득하고 있다. 자연히 여타 발전·난방 방식에 비해 ‘가성비’가 빼어나다. 한난에 따르면 집단에너지의 에너지 이용 효율은 일반 발전방식 대비 34% 높은 수준이다.

전국에 퍼진 사업소들을 통일된 체계하에 실시간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지역난방의 또 다른 장점이다. 판교지사 내부에는 전국 사업소와 수송관의 난방·발전·비축·수송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통합운영센터가 24시간 내내 운영되고 있다. 4조 3교대로 운영되는 일종의 전국 통합 상황실이다. 2019년 고양시 백석동 온수배관 파열 사고 이후에는 전국 열 공급망 위기 상황을 실시간으로 포착해 경고하는 ‘조기경보 시스템’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한난 관계자는 “(수송관에) 갑자기 큰 압력 변동이 발생하는 등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경보를 띄워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판교=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