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 계승한 정통주의 신학의 선구자 테오도르 베자 사망

입력 2024-10-22 03:05
칼뱅의 후계자이자 스위스 종교개혁의 지도자였던 테오도르 베자. 중국 고아를 돌봤던 선교사 글래디스 에일워드, 미국 감리교 초대 감독이었던 프랜시스 애즈버리, 대각성운동의 대표적 설교자이자 프린스턴대학 학장을 지낸 조너선 에드워즈, 네덜란드 정치가이자 칼뱅주의 신학자였던 아브라함 카이퍼(왼쪽부터).

1529년 10월 1일 마르틴 루터와 울리히 츠빙글리의 추종자들을 통합하기 위한 마르부르크 종교회의가 시작됐다. 회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 믿음에 의한 칭의, 세례에 관한 문제 등 14개 조항에 대해 의견일치를 이뤘다. 그러나 성찬 교리에 대해서는 분열된 상태였다. 츠빙글리는 빵과 포도주가 오직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성찬식을 거행할 때마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혹은 공간적으로 임하지는 않지만 본질적이며 실체적으로 임재한다며 ‘공재설’을 주장했다.

1187년 10월 2일 시리아 출신 무슬림 장군 살라딘이 십자군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1174년 이집트와 시리아를 함께 지배하는 술탄이 된 살라딘은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 왕국에 성전(지하드)을 선포하고 총공세를 펼쳤다. 살라딘은 예루살렘에 입성해 이곳을 방어하던 기독교인과 협상을 벌여 무혈 입성했다.

1703년 10월 5일 미국 복음주의 설교자이자 회중교회 신학자인 조너선 에드워즈가 코네티컷주 이스트 윈저에서 태어났다. 당대를 대표하는 신학자였던 그는 조용한 모노톤으로 전한 대각성 설교 ‘성난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죄인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에드워즈는 모든 사람이 쉽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구원관을 비판했으며 하나님의 전지전능함, 구원 예정설,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구원 등 전통적 청교도 교리를 강조했다.

1605년 10월 13일 칼뱅의 후계자이자 스위스 종교개혁의 지도자였던 테오도르 베자가 사망했다. 베자(1519~1605)는 칼뱅의 제자이며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는 칼뱅이 남긴 유산을 체계화해 정통주의 신학으로 발전시켰다. 베자는 고통받는 프랑스 위그노를 돕기 위해 독일과 프랑스 등지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여하며 발로 뛰었다. 또 예정론 논쟁에 뛰어들어 칼뱅을 후원했고 루터주의자들과의 성찬론 논쟁 등도 주도했다. 베자는 칼뱅이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의 초대 학장으로서 교육 체계와 커리큘럼을 만드는 데 힘썼다.

1900년 10월 15일 찰스 파함(1873~1929)이 미국 캔자스주 토피카에 베델성경대학을 열고 오순절 운동을 시작했다. ‘사도적 신앙 운동’이라고 일컬어지는 파함의 오순절운동은 캔자스의 베델성경대학에서 그의 학생들에게 성령 세례의 증거를 성경에서 검색하도록 했을 때 시작됐다. 이 학교의 유일한 교과서는 성경이었고 기도가 절대적으로 중시되었으며 학생들이 주말에 예배를 인도했다.

1932년 10월 15일 영국 리버풀에서 28세의 파출부였던 글래디스 에일워드(1902~1970)를 중국으로 위험한 선교 여행을 떠나보내기 위해 소수의 지지자들이 모였다. 그녀는 자신이 지원한 중국내지선교회에 의해 거절당했지만 현대 역사상 가장 놀라운 독신 여성 선교사 중 한 명이 되었다. 100명의 고아를 극적으로 구출한 그녀의 이야기는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여섯 번째 행복의 여관’(1958)에 소개됐다.

108년 10월 17일 전통에 따르면 안디옥의 주교였던 이그나티우스가 이날 순교했다. 이그나티우스는 자기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받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그나티우스는 “나는 더 이상 육신의 양식을 탐하지 않는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신 하나님의 떡을 맛보기 원한다…또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할 그의 보혈을 마시기를 원한다.…나는 하나님의 밀알이니, 짐승의 이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으로 발견될 것이다”라고 기도했다.

1844년 10월 22일 미국 침례교 평신도 설교자인 윌리엄 밀러의 추종자 10만명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날인 ‘속죄의 날’을 준비했다. 추종자들은 예수의 보혈로 옷을 희게 빨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회개와 성결을 주장했다. 예수님은 그러나 재림하지 않으셨고 밀러는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믿음을 유지했지만 성경 연대기의 실수를 ‘대실망’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 과정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등 여러 단체가 생겨났다.

1648년 10월 24일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으로 중부 유럽의 30년 전쟁이 종식됐다. 가톨릭과 개신교(소수 종교 포함)에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한 이 평화 조약은 가톨릭 제국으로서의 신성로마제국이 실질적으로 붕괴된 것을 의미했다.

1400년 10월 25일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가 그의 유명한 ‘캔터베리 이야기’ 집필을 중단한 채 런던에서 사망했다. 그는 종교 작가는 아니었지만 책에서 그의 인물들은 당대 교회의 최고와 최악을 적절하게 묘사했다. 초서는 평민으로서는 최고 영예인 웨스트민스터사원에 묻혔다.

1746년 10월 27일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자인 윌리엄 테넌트가 뉴저지 대학(현 프린스턴대학)의 설립 허가를 받았다. 그는 1726년 자신의 아들과 다른 사람들을 목회자로 양성하기 위해 신학교로 이 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대학 총장으로 아론 버, 조너선 에드워즈, 존 위더스푼 목사가 취임해 학교를 전국적인 명성을 얻도록 했다.

1771년 10월 27일 존 웨슬리가 미국 감리교인 600여명을 감독하기 위해 영국에서 파송한 프랜시스 애즈버리가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애즈버리는 45년 동안 미국에서 사역하면서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타고 약 30만 마일을 이동하며 1만6500회의 설교를 전했다. 그가 사망할 때까지 미국에는 20만명의 감리교인이 있었다.

1837년 10월 29일 네덜란드의 신학자이자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가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1907년 10월 29일 온 나라가 그의 7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지난 40년간 교회 국가 사회 언론 학교 과학 분야에서 네덜란드의 역사는 거의 모든 페이지에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는 쓸 수 없다”고 선언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성(城)교회 문에 95개조 논제를 발표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