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원. 이달 초 장로 피택을 받은 임원식(가명·57) 안수집사는 신용대출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내년 4월 임직 때 낼 ‘임직헌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임 안수집사는 “장로라는 자리도 부담되고 빚을 내서 헌금을 해야 할지도 고민”이라며 “장로 임직을 받을지 말지 가족들과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한국교회에서는 물질(헌금, 헌물)이 있어야 장로 권사 안수집사가 될 수 있는 문화가 관행처럼 남아 있다. 원래는 교회 중직자로 선출된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자신의 수준에 따라 헌금하는 것에서 시작했으나 최근엔 직분에 따라 액수가 정해져 있을 정도로 당연시되고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는 당시 사제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매관매직’을 비판하며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국민일보는 종교개혁 주일(27일)을 앞두고 일부 한국교회의 임직문화를 점검한다. 교회를 세우고 봉사의 일을 하는 임직의 본질은 사라지고 돈에 의해 좌우되는 왜곡된 임직 사례, 명예보다 ‘멍에’를 강조하는 작은 임직식 등을 살펴본다.
“정가는 아니지만 불문율이죠….”
임씨 사례처럼 교회마다 임직자들에게 헌금을 은근히 강요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경기도 부천의 한 교회를 섬기는 최명길(가명·62) 권사는 4년 전 권사로 임직받았을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당시 최 권사의 가정은 남편의 사업 실패로 재정 상황이 매우 어려웠다. 가택에 압류 경고 딱지가 붙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임직 투표에서 권사로 당선되자 그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 권사는 2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권사 임직자는 보통 300만원, 장로는 3000만원 이상 헌금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정가’가 있다고 들었다”며 “이 문제를 자녀들에게 털어놓았다가 핀잔만 들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최 권사는 자녀들 모르게 보험을 해약해 300만원을 마련했다. 그는 “만약 300만원을 내지 않았더라도 직분은 받았을 것”이라면서도 “분위기와 체면을 생각했을 때 나만 헌금을 하지 않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임직헌금 규모는 교회 규모에 따라 달랐다. 정해진 액수는 없지만 피택자들이 모여 회의를 거쳐 ‘이 정도의 헌금을 하자’고 의견을 모은다. 교회가 크면 선거 경쟁도 치열했던 만큼 감사의 크기도 클 수밖에 없다. 교회에 따라 이 임직헌금 액수를 담임목사에게 건의하는데 일부 목사는 ‘다시 생각해보라’며 돌려보낸다고 한다. 그러면 피택자들은 더 큰 액수의 헌금을 보고해야 한다. 작은 교회는 피택자들이 성도들을 위해 수건을 돌린다거나 식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끝낸다.
임직헌금만이 아니다. 임직자들이 교회에 필요한 가전을 구입하거나 음향공사, 리모델링 비용, 차량 구입을 부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장로 임직식에 오는 노회 관계자들에게 주는 거마비(교통비)나 축하객을 위한 기념품 등을 임직자들이 마련하는 관례도 있다. 이 때문에 교계 안팎에선 “가난하면 직분도 맡을 수 없는가”라는 냉소도 나오고 있다. 유전유직(有錢有職) 무전무직(無錢無職)인 셈이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3040세대 교인들은 이미 교회 직분 맡기를 꺼리고 있다. 21세기교회연구소(소장 정재영 교수)가 2022년 11월 전국의 30~49세 개신교인 남녀 4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3040세대의 신앙생활 탐구’ 조사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약 6명(58.5%)은 “향후 교회 중직(안수집사·권사·장로)을 맡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그래픽 참조). “열심히 하고 싶다”는 응답은 10명 중 1명 수준(12.2%)에 불과했다. 조사를 수행한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수평의식을 중시하는 젊은 성도들에게 직분은 위계질서”라며 “돈으로 얼룩진 임직문화를 기피하는 현상은 당연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봉사를 돈으로 평가하고 기준 삼는 문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신앙적으로 본이 되지 않는데 중직자가 되거나, 반대로 모범이 되는데 돈이 없어서 중직을 거절하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손동준 이현성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