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간염 치료기준 ‘바이러스 수치’로 바꾸면… 4만명 간암 예방 가능

입력 2024-10-22 04:12

국내 연구진이 간 수치가 정상이고 간경변증이 없는 환자 중에서도 혈액 내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위험 구간에 있으면 간암 발생 위험이 최대 8배까지 높아진다는 사실을 자체 개발한 간암 예측 모델을 통해 입증했다.

그동안 만성 B형간염은 간 수치가 크게 올랐거나 간경변증으로 진행된 환자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항바이러스 치료를 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토대로 간 수치 대신 간염 바이러스 수치를 기준으로 B형간염 치료를 시작할 경우 향후 국내에서 15년간 4만명의 간암 환자 발생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임영석 교수팀은 간 수치(ALT)가 정상 범위이고 간경변증이 없는 6949명의 국내 B형간염 환자에게서 혈중 간염 바이러스 값이 중간 수준(혈액 1㎖ 당 100만 단위)일 때 간암 위험이 가장 큰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대만 홍콩 등의 동일 조건 환자 7429명 대상으로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미국 내과의사협회 공식 저널(Annals of Internal Medicine) 최신호에 발표됐다.

그간 학계에선 간암 발생 위험이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비례해 선형적으로 증가하고 간염 치료 시작 후에는 바이러스 값이 급격히 내려가기 때문에 간암 위험과 간염 바이러스 수치는 큰 연관성이 없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연구팀은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100만 단위일 때 간암 위험이 가장 높고, 이보다 더 높아지거나 낮아질수록 위험은 점진적으로 감소해 두 지표의 상관성이 비선형적 포물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간암 위험도를 낮게 유지하려면 복잡한 B형간염 치료 개시 기준을 혈중 바이러스 수치만을 기준으로 단순화하고 조기에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학계에서 20여년 통용돼 온 지식을 다국적 환자 연구를 통해 사실에 맞게 정정한 것이다.

임 교수는 21일 “간암의 주원인인 B형간염 치료 기준이 엄격하다 보니 약 20%만 항바이러스제 처방을 받는 실정이다. 그간 근거가 부족해 치료 사각지대에 놓였던 만성 B형간염 환자들에게도 항바이러스 치료제 급여가 적용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