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재단사로 일한 어르신, 양복 갖춰입고 작별인사

입력 2024-10-22 04:13

4년 전 여든 살 말기 췌장암 환자의 집으로 호스피스 방문진료를 갔다. 어르신은 일어나 앉지 못하는 상태였고 허리가 굽은 부인이 간호하고 있었다. 다행히 통증은 없었는데, 부인의 걱정은 최근 밥을 넘기지 않고 곡기를 끊었다는 것이었다. 환자에게 영양제를 투여하려는데 명확지 않은 발음으로 기운을 짜내 뭐라 말씀을 하셨다. 도통 알아듣기 어려웠다. 부인이 다가와 귀 기울여 듣더니 실소를 하며 쓸데없는 말 말라 손사래를 쳤다. 뜻인즉슨 사흘 뒤에 죽을 테니 영양제 따위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어르신은 더듬더듬 한참을 더 말씀하셨는데 알아들을 수 없지만, 왠지 유언 같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담았다. 곰곰이 들어보니 부인에 대한 당부였다. 이제 자식들이 돌봐줄 테니 자기가 없어도 잘 지내라고 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사흘이 지나고 월요일이 됐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할 즈음 가정 호스피스 방문 간호사가 찾아왔다. 오전에 정말 그 어르신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사흘 뒤 세상을 뜨겠다는 말에 걱정이 돼 주말 동안 자녀들이 집에 모였고 큰아들은 부모님 댁에서 이틀을 자고 월요일 아침 회사로 출근했다. 그런데 아침 9시쯤 앉지도 못하던 어르신이 기를 쓰고 일어나 앉더니 부인더러 양복바지를 내오라고 했다. 갑자기 무슨 양복바지냐고 부인이 타박해도 한사코 내오라 고집이니 이길 수 없어 장롱 속 깊은 곳에 있던 바지를 꺼내와 입혀 드렸다. 양복에 셔츠까지 차려 입히니 얌전히 자리에 누웠다. 뭔가 서늘한 느낌이 들어 부인은 서둘러 아들에게 전화했고 아들은 차를 돌려 돌아왔다. 그리고 오전 11시쯤 어르신은 깨어나지 않는 잠에 드셨다.

어르신이 임종했다는 전화를 받고 우리 간호사는 오전 방문을 마치고 그 댁에 들렀고, 가족들을 위로하고 장례식장 가는 것을 도왔다. 사흘 뒤 떠난다는 예고 때문이었을까. 가족들은 모두 담담하고 의연했다고 한다. 우리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교수님, OOO 할아버지 직업이 뭔 줄 아세요?” 할아버지의 예전 직업을 내가 어찌 알까. 의아히 쳐다보니 그가 말했다. “양복 만드시던 재단사셨대요.” 여든 살 재단사는 생의 마지막 순간 정체성을 입고 세상을 졸하시어 숭고한 서사의 마무리란 가르침을 주셨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