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이란 헌정의 일시적 중단이라는 엄청난 일이다. 그런 얘기를 그리 쉽게 해선 안 됩니다.”
대표적 ‘의회주의자’로 꼽히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야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하야’ 등을 공공연히 거론하는 상황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김 전 총리는 지난 14일과 18일 국민일보와 가진 대면·서면 인터뷰에서 “(야당이) 탄핵을 바로 거론하기보다 윤 대통령에게 ‘국민이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 임계치를 넘기면 정권의 존립이 어려울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하면서 정국을 리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에 대한 ‘일극 체제’ 지적과 관련해서는 “이재명 대표 체제의 우리 당도 지금부터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국의 중심에 서 있는 김건희 여사 관련 논란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그저 감싸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김 전 총리와의 일문일답.
-10·16 재보궐 선거에서 여야 모두 텃밭은 사수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호남에서 ‘형제싸움’을 하느라 진을 다 빼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특히 윤석열정부 지지율이 바닥인데도 부산에서 못 이기고 안방만 지킨 것은 애석하다.”
-최근 정치 행보를 재개했는데.
“총선 이후 한발 비켜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정쟁이 격화되면서 많은 분이 ‘이렇게 정치가 어렵고 공동체가 흔들릴 때 당신이 목소리를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서민 경제와 청년의 미래, 신산업 문제와 저출생 문제 등 숱한 현안을 해결하려면 여야 협치 외에는 방도가 없다는 목소리를 내 달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김 여사 문제가 정치권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대통령께서 그저 내 부인이라는 이유로 감싸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해결할 수도 없다. 여권에서는 ‘사과하면 야당 공세가 더 거세질 것이니 사과해서는 안 된다’라는 목소리가 나온다는데,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으로 무책임한 소리다. 사과할 것은 빨리 사과하고, 그래서 국민이 마음으로 ‘이만하면 됐다’고 하셔야만 이 건이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바로 사과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이렇게 한가할 때가 아니지 않나. 김 여사와 관련해서도 흔히 말하는 위법 행위가 있으면 그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받고, 도덕적으로 비난의 소지가 있으면 사과하면 되지 않나. 그래야 지금의 도돌이표 정쟁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윤 대통령과는 과거 연이 있었는데,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른가.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나 검찰총장을 할 때만 해도 공직자로서의 금도랄까, 유연한 처신 같은 것을 의식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대통령에 오른 뒤 자꾸만 외골수로 빠지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자기 확신대로, 소신대로만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겠나.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국회와의 대화인데, 대통령은 국회를 거의 무시하고 있지 않나. 국민은 여야 협치로 성과를 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다음 달이면 윤석열정부 임기 반환점을 돈다. 조언이 있다면.
“정치권에 먼저 들어온 선배로서 고언을 드리자면, 내가 총리로 모셔보니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화려한 자리도, 영광스러운 자리도 아니다. 온 국민과 대한민국 공동체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대통령 아닌가. 그러니 대통령께서 자꾸 고집스럽게 당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주장하시면 안 될 것 같다. 하루속히 의회와 대화를 하고 특히 야당과 대화해서 대통령에게 꼭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시길 바란다.”
-170석 민주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국민은 민주당도 국정 운영의 책임을 일부 나눠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같다. 우선 의료대란 사태부터 해결하고, AI(인공지능) 신산업 분야에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얘기해야 한다. 특검도 여당에서 특검 추천권을 야당이 독점하면 안 된다고 하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한쪽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국민도 조금은 안심할 것 같다.”
-민주당의 일극 체제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은데.
“민주당의 생명은 다양성 존중에 있다. 민주당은 항상 소수정파, 자기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열어줬다. 그런 다양성으로 민주당은 어떤 어려운 상황도 돌파할 수 있었다. 이 대표의 민주당도 지금부터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민주당 내에서 최근 대통령 탄핵이 자주 거론된다.
“신중해야 하는 문제다. 예를 들어 조국혁신당이 탄핵을 주장하는 것과 제1야당인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은 무게가 다른 문제다. 탄핵이라는 것은 헌정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엄청난 일 아닌가. 그런 얘기를 쉽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탄핵을 얘기하기 전에 윤 대통령에게 ‘지금 지지율이 20%대다. 국민이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 임계치를 넘기면 정권 존립이 어려울 것’이라는 강한 경고를 하면서 정국을 리드했으면 좋겠다.”
-‘신 3김(김경수·김동연·김부겸)’이란 말도 나온다.
“너무 성급한 얘기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누가 알겠나. 지금 중요한 것은 누군가는 싸움을 말리고, 누군가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이 길은 아니지 않으냐’라는 소리를 하는 것 아니겠나.”
전웅빈 최승욱 송경모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