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U]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교육 사역으로 ‘콩고의 미래’ 키운다

입력 2024-10-22 03:08
김경식 선교사가 아프리카 교육 사역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1991년 콩고민주공화국(콩고)은 군인에 의한 폭동으로 혼돈의 시기를 겪었다. 이듬해 외국인들이 엑소더스(대탈출)하는 시기, 김경식(65) 선교사는 정반대의 선택을 하고 험지로 들어갔다. 이후 30년 넘게 현지에서 장애인·교육·방송 사역 등을 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려왔다. 잠시 귀국한 김 선교사를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콩고에 도착한 직후 빵을 나눠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매일 200~300여명에게 빵을 나눠주다 길에서 자연스럽게 예배도 드렸다.

예배에 참여하는 이들이 늘면서 예배 공간이 절실해졌다. 1994년 수도 킨샤사에 무쉬교회를 개척했는데 콩고에서는 첫 장애인 교회였다. 이들을 돌보다 홍역에 걸린 아이들이 고열에 시달리는 걸 봤다고 한다.

“고열에 대한 경각심이 없어 약을 잘 안 먹이는 것이었어요. 교육이 필요했죠. 성경공부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된다 싶었어요. 학교 사역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하나님은 사역의 길을 조금씩 열어주셨다. 1996년 킨샤사 퐁파쥬 지역에 초·중·고등학교를 세웠다. 콩고에서는 처음으로 컴퓨터 교육도 했다. 킨샤사 닝구알라의 부지를 기증받아 또 다시 초·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현재 5개로 늘어난 초·중·고등학교를 통해 5000명을 웃도는 학생들이 ‘콩고 꿈나무’로 자라고 있다.

김 선교사는 “정부에서 학교를 100개 지어달라고 했는데 그럴 여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에 역제안한 게 방송국이었다. 한국의 교육방송(EBS) 등을 언급하면서 정부를 설득했다고 한다.

2002년 FM 방송에 이어 이듬해 TV 방송국인 CEBS를 설립했다. 종합편성 채널로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20~30%의 프로그램은 선교·교육 방송을 제작하는데 호평을 얻고 있다.

하지만 바람 잘 날이 없었다. 2009년 기자와 피디들이 파업도 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운 방송국에서 상업적 프로그램을 제작하자는 제작진의 요구를 무작정 들어줄 수 없어 난감했다”고 회고했다.

고난은 또 다른 사역의 문을 열었다. 파업이 끝난 이듬해 킨샤사에 레베렁킴대학교를 설립했다. 의대와 법대, 컴퓨터공학과 등 5개 학과를 보유한 종합대학으로 5000여명이 다닌다.

지난달 콩고 킨샤사에 있는 레베렁킴대에서 졸업식이 진행되는 모습.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교훈을 따라 콩고에 만연한 학연·지연, 부정부패가 통하지 않는 학교로 세웠다. 의과대학의 경우 신입생을 250~350명 받지만 졸업생은 50~70명에 그친다. 다른 학과도 마찬가지다. 졸업생들은 각계 각층에서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이 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건축 중인 병원은 내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한다.

방송국 출신 직원들도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콩고 공보부 현 장관이 김 선교사가 설립한 방송국 앵커 출신이다.

돌이켜보면 쉬운 사역은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폭동으로 생명의 위협도 받았고 CEBS 일로 조사까지 받던 중 심근경색 치료도 받았다. 그는 오직 기도뿐이었다는 고백을 했다. 김 선교사는 “기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여러분의 중보기도가 있었고 저 역시 매일 시간을 정하고 기도한다”고 전했다.

글·사진=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