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는 제30회 국제교회성장연구원(CGI) 세계교회성장대회 개막을 이틀 앞둔 21일 대회에 참가하는 주요 해외 목회자들을 상대로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프랑수아 포슐레(79·프랑스), 밥 로저스(76·미국), 모사 소노(63·남아프리카공화국) 목사가 그 주인공들이다. CGI 이사들이기도 한 이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증명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CGI에 대한 애정과 이 단체를 설립한 조용기(1936~2021) 목사, 현재 CGI 총재를 맡은 이영훈 목사를 향한 존경심을 표시했다.
“CGI 덕분에 목회 비전 실현”
프랑스 에비던스교회를 섬기는 포슐레 목사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들려줬다. 부모는 일찍 갈라선 탓에 포슐레 목사는 어린 시절부터 사실상 혼자 힘으로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열네 살 때부터 시장에서 일했으며 20대가 돼서도 그의 앞날은 막막하기만 했다. 이렇듯 인생에 절망과 고통만 가득하다고 여기던 순간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왔다. 그의 나이 스물세 살 때였다.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2년 뒤 그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다시피 했다. 먼 지역에 사는 성도들을 데리러 한때는 거의 매주 60㎞ 넘는 거리를 운전하기도 했고 이 같은 노력은 부흥으로 이어졌다. 1971년부터 88년까지 프랑스 동부에 세운 교회만 12곳에 달했다. 이후 스트라스부르에 많은 성도를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을 지었고 40개국을 돌아다니며 대규모 전도 집회를 인도했다.
그를 CGI로 이끈 이는 조 목사였다. 포슐레 목사는 “유명하지 않던 프랑스 목회자를 CGI에 초대해줘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이어 “조 목사와의 교류는 내게 엄청난 특권이었다”며 “CGI 덕분에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일군 부흥을 따라 할 수 있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영어 실력이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CGI 멤버들과 교류하면서 그들과 형제애를 쌓을 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귀한 영적 조언을 받았고 그것들은 매우 유용했다. CGI 일원이 된 것은 나의 목회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엄청난 영광이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기적
로저스 목사가 처음 한국을 찾은 것은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였다.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왔고 조 목사가 인도한 집회에 참석해 조 목사의 장모였던 최자실(1915~1989) 목사를 만났다고 한다.
“최 목사에게 교회 성장의 비결을 물었는데, 저는 그때 그녀가 했던 말과 행동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말하더군요. ‘기도하고 또 기도하라.’ 그러면서 이런 말도 덧붙였어요. ‘빨리, 빨리, 빨리….’ 그다음엔 기도원에 가보라고 했어요. 기도원에 도착하니 그곳엔 이미 1500명에 달하는 사람이 모인 상태였습니다.”
그곳에서 로저스 목사는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청년들을 봤고 숱한 기적의 현장을 목격했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은 목회 인생의 자양분이 됐다. 조 목사의 목회 철학인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에 담긴 의미를 전하면서 교회는 크게 부흥했다. 그가 시무하는 미국 켄터키주 에반젤월드프레어센터(Evangel World Prayer Center)는 미국을 대표하는 오순절 교회 중 하나가 됐다. 로저스 목사는 구호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매주 극빈층 5만명에게 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로저스 목사는 “나는 과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목격했다”며 “조 목사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나의 사역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CGI에 참여하게 된 것은 내겐 영광일 수밖에 없었다”면서 “조 목사의 뒤를 이어 CGI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 목사의 엄청난 리더십에도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나의 사역, CGI에서 큰 영향 받았다”
소노 목사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영적 지도자 중 한 명이다. 그가 CGI에 가입한 것은 가나의 유명 목회자이자 CGI 이사인 댁 휴워드 밀스 목사를 통해서였다. CGI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 밀스 목사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소노 목사는 이사회의 일원이 됐다. 소노 목사는 “CGI 이사가 됐을 땐 너무 놀라웠다”고 말했다.
그가 크리스천으로 거듭난 것은 열일곱 살이던 78년의 어느 날이었다. 당시 한 집회에 참석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남아공을 대표하는 목회자였던 레이 맥컬리 목사가 세운 레마성경수련원에서 공부했고 83년 소웨토 지역의 레마교회 담임목사가 됐다. 부임 직후 이 교회 이름은 그레이스바이블교회로 바뀌었다.
현재 그가 섬기는 교회의 출석 성도는 4만명에 달한다. 남아공 여러 지역에 지교회도 세웠다. 성령 회복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가끔은 대형 스타디움에서 집회를 열기도 한다.
교회 성장의 끌차 역할을 한 것 중 하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 전략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그는 “책을 통해 조 목사의 활동을 알게 됐고 구역(셀·cell)을 조직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CGI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소회를 들려줬다.
그는 “아프리카 대륙의 원로 목회자들을 통해, 그리고 각종 자료를 통해 CGI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CGI 회원이 된 뒤 많은 목회자를 만났다. 그들이 일군 부흥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저의 사역엔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