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미래포럼] “경제안보, 국가 간 경쟁 넘은 전쟁 양상… 장기전 될 것”

입력 2024-10-18 00:22

“경제안보는 국가 간 경쟁을 넘어 전쟁의 양상에 돌입했습니다. 전통적인 통상 교역, 다자 무역의 개념 자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민일보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주최한 ‘2024 국민미래포럼’에서 전문가 토론의 좌장을 맡은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은 “우리는 경제안보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한복판에 서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 경제안보 전쟁-한국의 생존전략’을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은 다음 달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고조되는 글로벌 경제안보 강화 흐름에 대한 대응 및 해법을 모색했다.

김 상근부회장과 함께 단상에 오른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과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패널 발표 및 토론을 통해 서로 머리를 맞댔다. 외교부 경제통상대사·자유무역협정(FTA) 교섭대표 등을 역임한 최 고문은 “미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경제안보 전쟁은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자국 경제안보를 위해 구속력 있는 법안을 만들고, 통상 압력에 즉각 보복에 뛰어드는 상황은 집권정당 성향과 관계 없는 공통적 현상이 됐다는 진단이다. 그는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서로 피 터지게 싸워도 경제안보 분야에선 손잡고 수많은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며 “미국 경제안보의 핵심은 중국에 대한 견제로 이런 기조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생존전략’을 주제로 발표를 이어간 허 교수도 “대선 결과와 별개로 미국 경제안보의 큰 틀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세부 각론에선 차이를 보였다. 허 교수는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 “(한국 등) 우방국에 역할을 주고 경제안보 전쟁을 함께 하는 스타일”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선 “우방국의 체급과 관계없이 한 명씩 무역의 링 위로 올려서 싸우게 하는 이종격투기 선수”라며 “우리로선 버거운 상대”라고 평가했다.

경제안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격과 방어 전략도 눈길을 끌었다. 국제 분쟁을 비롯한 국제법 전문가인 이 원장은 공격 측면을 거론하며 “선제적·능동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간 미국과 EU가 각각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자국의 공급망 구축, 환경 규제 법안을 내놓을 때마다 국내 기업과 정부가 뒤쫓아가는 상황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주요국이 경제안보 법안을 내놓으면 그 파장을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찾는데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며 “지금까지는 정부와 기업이 잘 버텼지만 앞으로는 선제적 공격으로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강대국의 통상 위협을 이겨낼 방어 전략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최 고문은 국내 반도체·이차전지 기업 등의 기술 탈취를 노린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해 외국인 투자 심사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외국인이 국내에 투자할 때(인바운드) 기술 유출 위험을 어떻게 대응할지, 또 해외 투자 과정(아웃바운드)에서 국내 핵심 기술이 유출되는 상황은 어떻게 예방할지 관련 법 규정이 없다”며 “현재 입법 보완이 논의되고 있지만 더 정교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고문은 또 “관세 부과 등 각종 ‘경제적 강압’에 맞설 대응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무역 보복 위협을 겪은 EU가 모니터링부터 협의 경고 보복 조치까지 단계적으로 이어지는 ‘통상 위협 대응조치’를 마련한 것을 사례로 들며 “우리도 경제안보 전쟁을 대하는 구체적 행동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상근부회장도 “EU가 타국의 경제적 압력에 대해 단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세운 것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해외 기술 유출에 대한 징벌적 처벌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 고문은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은 정부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며 “입법부인 국회가 처벌 법안을 강화하고 사법부가 공조에 나서는 흐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패널들은 정부와 기업의 일치된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허 교수는 “경제안보 시대엔 기업이 정부에 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말해 정부를 압박하고 움직이게 해야 한다”며 “정부도 주요국과의 R&D 공동 투자, 기술 동맹을 맺는 방식 등으로 마중물을 부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 원장은 “한국은 아직 주요국 대비 투자가 너무 적고, 조심스럽고, 지엽적이다”며 “미국 EU 일본 등을 쫓아가려면 국가안보, 첨단 기술에 대한 대규모 지원 조치가 시급하다”고 했다.

최 고문도 “반도체산업 등에 정부 지원 대출이나 기금이 활용되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라며 “포괄적이고 장기적 지원을 통한 적극적인 경쟁력 강화 조치가 시급하다”고 했다. 김 상근부회장은 “경제안보의 엔드게임(종반전)은 기업이 얼마나 초격차를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과감한 재정 지원과 이를 수행할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컨트롤타워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패널들은 이날 토론에 앞서 사전 모임을 하고 의견을 교환했다. 경제안보가 한국 경제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 상황에서 원론적 담론보다 실질적인 해법 도출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 기술에 대한 경제안보 전쟁은 ‘연습 경기’ 수준이었다”며 “한국 경제의 앞날을 좌우할 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양민철 김혜지 구정하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