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은 17일 임기를 마치면서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하고 재판 독립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소장 등 재판관 3명은 여야 정쟁 속에 후임자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퇴임을 맞았다.
이 소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헌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최근 몇 년 사이 권한쟁의, 탄핵심판 같은 사건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정치적 분쟁이 사법부에 많이 제기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나타나면 뒤이어 사법의 정치화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법의 정치화 현상은 결국 헌재 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해칠 것”이라며 “헌재 가족 모두는 마음가짐과 의지를 굳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퇴임사 말미에 헌재 구성원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함께 퇴임한 이영진 재판관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격언과 함께 헌재에 신속한 사건 처리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후임 재판관이 선출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사건 심리와 처리는 더욱 정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기영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6년간 여러 사건을 접하며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담은 의견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미련은 없다. 앞으로 훨씬 더 좋은 결정을 많이 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판관 3명이 떠나면서 헌재는 18일부터 ‘6인 체제’가 된다. 헌재는 지난 14일 ‘재판관 7명 이상 출석해야 사건을 심리한다’는 헌재법 23조 1항의 효력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일시 정지시켰다. 퇴임하는 재판관들은 효력정지 결정을 내리면서 남은 재판관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봤고, 6명 재판관 모두 심리는 계속돼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헌재 마비’ 사태는 일단 피했지만 여야가 각각 몇 명을 추천할지를 놓고 다투고 있어 후임은 정해지지 않았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은 위헌이나 탄핵 등 중요 결정을 할 때 재판관 9명 중 6명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며 “6인 체제는 극약 처방일 뿐 여야가 재판관 선출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