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헌법서 ‘통일·민족·자주’ 문구 대거 삭제한 듯

입력 2024-10-18 01:15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7일 이틀 전 있었던 경의선·동해선 남북연결 도로·철도 폭파 소식을 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사회주의헌법을 개정해 대한민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한 사실을 밝히면서 통일·민족 관련 표현들이 헌법에서 대거 삭제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아 북한 당국이 여전히 통일·민족 표현 삭제로 인한 내부 불만과 혼란을 우려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주민들을 동원해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며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고히 하기 위한 명분 쌓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북한은 17일 노동신문 1면에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을 언급했는데, 이는 지난 7~8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에서 남한을 적대적 국가로 명기하는 헌법 개정을 단행했음을 뜻한다. 최고인민회의는 우리의 국회 격 기관으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개정 권한이 있다. 북한은 9일 최고인민회의 관련 보도에서는 ‘노동·선거 나이’ 개정 외에 구체적인 내용은 내놓지 않았다.

이번에 북한이 언급한 내용을 고려하면 헌법에서 ‘통일’ ‘민족’ ‘자주’ 등과 관련한 문구가 대거 삭제됐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통화에서 “북한 헌법에 통일과 관련된 내용이 우리보다 더 많은데 그런 것들을 다 걷어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헌법 제9조의 변화가 예상된다.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삭제돼야 한다”고 지시했다. 김 위원장의 지시대로라면 9조에는 ‘북반부에서 인민정권 강화’ 및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어 수정이 불가피하다.

선대 지도자인 김일성·김정일의 업적이 담긴 헌법 서문의 표현도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라의 통일을 민족 지상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조국통일 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길을 열어놓으셨다’ 등의 표현이 다듬어졌을 수 있다.

북한은 현재 헌법 전문 공개나 관련한 사상 교육은 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에게 통일·민족 표현 삭제를 설득할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적대적 국가 규정은 언급해도 큰 혼란이 없지만 통일·민족 삭제를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다”며 “이데올로기적인 혼란을 우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신 북한은 대남 적개심 고취 작업을 이어가며 한국과의 단절을 합리화하는 명분을 쌓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이 통일·민족 삭제와 함께 지시했던 영토조항 신설 여부도 주목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영토 규정 등에 대해 예단하지 않고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노동신문은 이날 2010년 11월 일으킨 연평도 포격 사건을 언급하며 “도발자들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명백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향후 서해 북방한계선(NLL) 수역이나 접경지에서의 도발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