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우리 세금 약 1800억원이 투입된 경의·동해선을 한번에 날려버렸지만 정부가 북한에 배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의·동해선 북측 연결도로의 소유권이 북한에 있어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제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경의·동해선 건설을 위해 북한에 지원된 차관의 상환을 앞으로도 지속해서 요구하고 이뤄지지 않으면 법적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16일 통화에서 북한의 전날 경의·동해선 연결도로 폭파와 관련해 “우리 측이 법적 조치에 나설 근거가 아직 없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전날 입장문에서도 “폭파와 관련한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면서도 법적 대응에 대한 언급 없이 북한의 차관 상환 의무만 강조했다.
앞서 통일부는 북한이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책임을 물어 총 447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통일부가 이번 사안에 대해 법적 조치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달리 경의·동해선의 소유권은 북한에 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더라도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다만 우리 정부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현물차관을 통해 지원한 1억3290만 달러(약 1800억원)에 대한 상환 의무가 남아 있다. 경의·동해선 폭파와 별개로 채권에 대한 소유권은 여전히 우리 정부 소유다. 또 다른 통일부 당국자는 “우리가 손해를 봤어야 법적 조치를 하는데 우리는 손해본 일이 없다”며 “채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차관은 통상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개념이라는 점도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운 이유다. 통일부 당국자는 “차관을 돌려달라고 촉구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이 갚아야 할 돈은 매년 늘어나는 상황이다. 경의·동해선 현물차관 상환 기간은 10년 거치 20년 분할로 30년 내에 갚아야 한다. 마지막 차관이 이뤄진 2008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2018년부터 꾸준히 이자가 쌓인 것이다. 거치 기간에는 무이자, 분할 기간에는 이자율 1%로 원금을 나눠서 갚아야 한다.
그러나 북한이 차관을 갚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이 그간 우리의 차관을 갚은 건 2008년 1월 경공업 원자재 차관에 대해 240만 달러 상당의 아연괴 1005t을 현물로 준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경의·동해선 폭파에 대한 사실을 관영 매체를 통해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경의·동해선 폭파는 우리의 공세를 막겠다는 ‘방어적 차원’의 조치”라며 “대남 공세적인 태도를 이어가겠다는 흐름과 맞지 않기 때문에 보도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북한은 노동신문 1면에 한국의 무인기 침투에 복수하기 위해 청년 140만명이 자원 입대를 탄원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