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책과 길] ‘한강 읽기’… 그의 추천도서부터 시작해볼까

입력 2024-10-18 04:07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서점가에서는 ‘한강 읽기’ 열풍이 불고 있다. 한강의 작품들은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점령했다. 그만큼 한강의 작품을 읽은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어떤 작품을 읽을지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노벨문학상을 선정해 발표한 스웨덴 한림원 노벨위원회의 평가와 논평이 힌트가 될 수 있겠다. 출판계에서는 한강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으로 책 읽기가 확산하기를 기대한다. 한강이 추천한 책들부터 책 읽기를 시작하면 어떨까.

스웨덴 한림원이 언급한 한강의 작품들

노벨위원회는 지난 10일 노벨문학상 선정 결과를 밝히며 ‘소년이 온다’(2014), ‘흰’(2018), ‘작별하지 않는다’(2021) 등 세 편을 가장 비중 있게 논평했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신군부의 무력 진압과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다뤘다.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위원회는 “소설은 희생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잔혹한 현실을 생생히 그려내 ‘증인 문학’이라는 장르에 접근해간다”고 평했다.

‘흰’은 소설이면서 시이기도 한 독특한 형식의 글 모음이다.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강보, 배내옷, 소금, 눈, 달, 쌀, 파도 등 세상의 흰 것들에 관해 쓴 65편의 짧은 글을 묶었다. 위원회는 “흰색 사물들에 관한 짧은 단상들이 이어지며 작중 화자의 언니가 될 뻔한, 태어난 지 불과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헌정하는 비가(悲歌)”라고 요약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의 길고 긴 투쟁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 위원회는 “압축적이고 정확한 이미지로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집단 망각에 빠진 상태를 드러내려고 끈질기게 시도한다”고 평했다. 한강 자신도 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로 시작할 것을 권했다.

위원회는 2016년 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2007)와 장편 ‘희랍어 시간’(2011), 소설집 ‘노랑무늬영원’(2012) 등도 언급했다.

한강이 영향받고, 주목한 책들

한강은 2014년 네이버의 연속 기획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에서 ‘내 인생의 책’으로 5권을 언급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어느 시인의 죽음’(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이별 없는 세대’(볼프강 보르헤르트), ‘케테 콜비츠’(카테리네 크라머), ‘아버지의 땅’(임철우) 등이다. 한강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해 “이렇게 철저하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파고들어서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으면서 소설을 써낼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고 소개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겪은 체험과 전후에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그린 단편집 ‘이별 없는 세대’는 “뭔가를 이루어보겠다는 마음 없이 마치 혼자서 성냥불을 켜보고 그게 꺼지는 걸 들여다보는 것 같은 그런 짧고도 내밀한 그러면서 아주 따뜻하고 진실한 기록들”이라고 했다. 임철우의 단편집 ‘아버지의 땅’은 한국전쟁 전후의 학살과 1980년 5월 광주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한국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중3 때 이 책을 읽었다는 한강은 “완벽주의에 가까운 문장들에 놀랐다”고 말했다.

한강이 노벨위원회와 전화 인터뷰에서 언급한 ‘사자왕 형제의 모험’도 빼놓을 수 없다. ‘말괄량이 삐삐’를 쓴 스웨덴의 국민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이다. 연약한 소년 칼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악에 맞서는 사자왕 요나탄 두 형제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감행하는 모험을 그린 판타지 동화다. 한강은 2017년 노르웨이의 문학 행사에 참석해 열두 살에 읽은 이 동화를 통해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했다”면서 “내면에서 1980년 광주와 연결돼 있었다”고 말했다.

한강이 소설가인 부친 한승원에게 선물해 준 책들도 최근 공개돼 화제가 됐다. 시인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긴 호흡’이나 북미 인디언 출신의 식물학자 로빈 윌 키머러의 ‘이끼와 함께’ 등이다. 올 초 한강은 부친에게 이 책을 선물하며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편지에 적었다.

한강이 노벨 문학상 수상 직전 한 매체와 서면 인터뷰에서 최근 읽은 책들도 소개했다. 동료 소설가들의 최근작인 ‘빛과 멜로디’(조해진), ‘이중 하나는 거짓말’(김애란)을 비롯해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유디트 샬란스키), ‘루소의 식물학 강의’(장자크 루소) 등이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