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하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바로 질문의 중요성이다. 그래프 이론이라는 강의를 담당했던 교수로부터다. 교수님은 프로그램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질문만 잘하면 필기시험과 무관하게 A학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프로젝트에 열중했다. 최소 5회 이상 연구실을 방문해 프로젝트에 관해 질문했다. 물론 질문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를 해야 했다. 현명한 질문을 통해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까다롭고 어려운 프로젝트였음에도 나는 만점을 받았다. 하지만 학기말 시험은 적지 않게 실수했다. 성적표를 받아 보니 B학점이었다. 프로젝트만 잘하면 A학점을 주겠다는 교수님의 말과 달랐다.
나는 교수님을 찾아가서 학점을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교수님은 그 자리에서 A학점으로 정정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서 질문의 중요성을 느꼈다. 나는 질문을 통해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그 교수님에게 보여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교수님과의 개인적 유대관계도 더 돈독히 다질 수 있었다. 질문한다는 건 상대방의 실력을 인정하고 그를 존중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맺기 원한다면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나는 교수가 꿈이었기에 박사 과정을 원했다. 2학기를 마치고 아내에게 계획을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반대했다. 가족의 생활을 해결하는 방안 없이 박사 과정을 고집한다면 자기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의 생활이 그만큼 아내를 힘들게 만들었다. 아내의 반대로 나는 박사 과정을 포기하고 취직하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박사 과정 포기는 좋은 결정이었다. 만약 박사 과정을 고집했다면 교수는 됐을지언정 사업가는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큰 꿈을 꾸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그 꿈이 현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물거품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그렇기에 때때로 꿈을 포기하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취직을 결단하고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영주권도 없는 데다 언어 장벽까지 겪고 있는 상태에서 취직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석사 과정 마지막 학기를 시작할 때 회사 50여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대부분 면접조차 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 뉴저지주 스파타라는 작은 시골에 있는 LRS라는 회사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되는 작은 회사로 전 직원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처음부터 크고 안정된 회사에 취직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작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도 장점이 있다. 첫째는 어떤 한 분야만 아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노력의 대가가 즉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크고 안정된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면 나중에 그 회사의 중역은 됐을지 몰라도 훗날 회사를 창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회사에 취직하라. 근사한 회사와 좋은 회사는 다르다.
정리=김동규 기자 kkyu@kmib.co.kr